나는 샌들에 양말 신는 걸 좋아한다.
그게 하나의 코디로써 너그럽게 용인되는 분위기가 아니라
발바닥에 땀이 많은 아재들의 실용주의 노선으로 평가되고
많은 이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던 시절부터 그랬다.
근데 생각해 보세요. 왜 눈살을 찌푸렸을까.
양말 좀 신는 게 남에게 피해주는 일도 아닌데요.
스웨이드 재질 혹은 방수 재질의 버켄스탁에
도톰한 스포츠 양말 신기부터
차코나 테바같은 스포츠샌들에 흰 양말 신기
혹은 가죽 피셔맨 샌들에 컬러 양말 신기까지 ...
특히 나는 앞굽과 뒷굽의 차가 없는 플랫폼 샌들에
플레인한 검정 양말 신는 걸 좋아한다.
그러니까 이런 내가 2021년 여름에 마일즈를 산 일은
거의 자연법칙에 가깝지 않았을까. (아님 암튼 아님)
정작 4월 하순이 되면 러닝할 때 빼고는
주구장창 맨발에 하바이 아나스만 꿰고 다니는 주제에.
가끔 보수적인 미팅 때문에 두 발을 천으로 감싼 날에는
종일 정수리에서 피가 끓는 파워 열불맨인 주제에.
그런 주제에 말입니다.
한여름에 검정 양말에 마일즈 꼬옥 신을 거라며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는 걸까요.
그럼 아무래도 딴딴한 가죽을 피로 길들일 필요가 적을 것이며 ...
이건 발등의 안전마저 고려한 선택이라며 ...
나름 합리적인 염불을 외우며 샀다.
(돌이켜 보면 당시 업무 스트레스 과중)
<마일즈 UK4, 230>
그래서 마일즈는 과연 피로 길들이는 일이 없었는가?
아니오. 정말로 아니오. 특히 발등 높은 사람ㅡ 발등 브레이커일 것.
난 또 왜 그랬는지
별 생각없이 발등 버클을 타이트하게 조정하고 나다니다가
앞굽 갈리고 (네... 그래서 가위로 잘라냄) 발등에 상처를 냈다.
약간의 시행착오를 통해 깨달은 팁이 있다면,
위쪽 버클은 널널하게,
아래쪽 버클은 적당히 맞게 조정하면 한결 나을 것.
초반에 양말을 신고 길들이는 것도 방법일 것.
그리고 가죽 밴딩이 닿는 부분에 미리 밴드를 붙일 것.
마일즈의 장점이라면
아무데나 잘 어울리고
다른 닥마 로퍼류에 비해 가볍고
신고 벗기 편하다는 점일텐데
평소 걷는 양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주의가 좀 필요한 것 같다.
이거 신고 5K 이상 걸으면 무릎에 약간 부하가 걸리는 느낌이 듦.
내가 평소 무릎이 안 좋으냐 하면 그렇지 않음.
근데 누가 닥마를 신고 5K를 걸어 다니냐고요? 저요.
달리기 할 때 쓰려고 무릎 관절 애끼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한여름에도 쿠션 빠방한 운동화를 신는 게 정답이긴 하겠다.
근데 저는 안돼. 속에서 천불이 나서 안 도ㅐ.
<나틸라 UK4, 230>
그리고 올 5월 하순경에 나틸라를 들였다.
양심은 있어가지고 (...)
abc마트 15일 출석 쿠폰 받아서 20% 할인가로 샀다.
* 잠깐 ABC마트 출석쿠폰을 부연하자면
출석체크 5일 10%, 15일 20%, 30일 30% 쿠폰을 줌
간혹 적용 안 되는 브랜도도 있지만 닥터마틴 된다 -
어느 날 역추적을 해보았다.
마일즈 신고 무릎 아팠다면서
왜 이런 짓(말하자면 끈 많이 달린 마일즈를 또 산 거임)을 하고 말았냐.
마일즈 살 때 이거랑 둘 중에 고민했었거든요.
결국 사고 싶었던 건 사고 마는 것이라는 깨달음.
매복물욕인지 잠복물욕인지의 노련한 시간차 공격을
나는 방어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의 숙원 사업.
몇 번의 여름을 지나며 내내
레이스업 샌들을 하나 구비하고 싶었는데,
손 쉽게 구할 수 있는 범위에서 찾다보니
조악한 끈, 돌부리에도 뚫릴 것처럼 얇은 밑창 같은 것을
네이버에서 서치하다가 그만 정신이 지쳐 버려서
또 이럴 바에야 튼튼한 쪽으로 라고
선택이 확 기울어버린 것 같다. (이건 뭐 거의 점심메뉴 맥도날드 법칙임)
(+ 또 한 번의 레이스업 샌들을 살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에스토두스를 한 번 고려해 볼 것.
다른 건 모르겠고 끈을 바꿀 수 있다는 게 맘에 들었다.)
흠흠. 암튼 나틸라의 컬러는 세 가지.
블랙, 화이트 그리고 브라운.
화이트랑 브라운을 잠깐 고려해봤는데 (닥터마틴 공홈에 있음)
화이트는 너무 오프화이트고
브라운은 미묘하게 밑창과 뭔가 부조화.
그래서 블랙으로 결정했다. (이 때 닥마 공홈-> abc 마트로 선회)
사이즈는 마일즈와 동일하게 주문했다.
나틸라는 발등이 뚫려 있고
뒷꿈치를 잡아주는 뒷축이 있어서
마일즈에 비해 본인의 발길이가 실감되는 타입이다.
그래서인지 어쩐지 살짝 크다는 느낌.
다만 버클타입에 비해 끈으로 미세 조정이 가능하고
서 있을 때도 안정감이 들어 좋았다.
걸을 때마다 발등에 힘을 주게 되는 마일즈에 비해
착화감은 더 나을 것으로 예상.
끈을 드라마틱하게 종아리까지 올려 묶으려는 시도만 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아무데나 잘 어울리는 건 의외로 마일즈보다 나틸라인 듯.
걍 정말로 아무데나 어울린다.
종이봉투를 뒤집어 써도 얘가 멱살 쥐고 자기 쪽으로 끌고 갈 것.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둘 중에 하나만 고르라면
나는 아마 나틸라를 고를 것이다.
아직 방치 플레이 기간이라 얌전히 방 구석에 두었는데
정작 걸어 보면 또 어떨지. (신어보고 후기 추가할게요)
린넨 쪼가리들이랑 스파르타 느낌으로 신어 봐야지.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나의 헤그리드 머리랑 찰떡이기를 바라며.
벌써 더운데 진정한 한여름 전투템이 되어줘.
+ 사이즈팁
아디다스 220
뉴발란스 225
반스 225
컨버스 230
나이키 240
닥터마틴 230 (=uk4)
하바이 아나스 35-36 (225-230)
버켄스탁 36 (230)
로퍼 230 힐 235 부츠 235-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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