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두 권의 책은
요새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 오는 사람들 때문에 피곤하던 차에
반은 장난으로 빌렸다. 근데 내가 너무 오만했던 것 같다.
별 기대하지 않고 읽다가 뼈 맞고 정신이 번쩍 든 경험을 함.
"예민한 사람들은 상대방이 자신의 경계를 존중하지 않고 너무 가까이 다가온다고 한숨을 쉬곤 하지만,
때로는 스스로 경계를 침범하는 경우도 많다. 자신의 경계를 침범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경계를 침
범한다. 이 둘 모두 자기 지각 능력의 결핍 때문이다. 이런 일은 좋은 의도로 포장되기도 한다. 경계 설정
의 무능력을 도움과 선행이라는 높은 이상으로 포장하고 변호하는 것이다" (<예민함이라는 무기>, 155p)
나 자신이 예민하다는 건 일단 알았고
그래,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지? 고민이 될 때,
삶을 어떻게 수선해 가야할지에 대한 큰 틀을 제시해주는 것 같다.
본인이 예민해서 사회생활이 힘들다 생각하는 사람에게 추천.
혹은 예민한 아이를 키우시는 분들이 읽으셔도 좋을 것 같다.
미루고 미뤄 오던 두 권의 책.
너무 훌륭한 책이고 꼭 읽어야지 다짐했었는데
어쩐지 마음이 무거워서 페이지를 넘길 수 없는 책이 있다.
근데 요새는 내 마음이 대수냐고 스스로 묻는다.
내 감정이 대수냐고.
조금씩 읽고 있고, 아직 다 못 읽었다.
<가난의 문법>의 저자는 일단 글을 너무 잘 쓰시는 분이다.
특정인물을 특정하지 않기 위해 약간의 허구를 더했다고 하는데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와 태도에 반했다.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는 내가 얼마나 좁은 식견으로
좁은 테두리 안에서 살아 왔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이야기라는 사실을 다시금.
근데 하루 한 챕터 이상 못 읽는다. 이야기에 너무 압도 당해서.
오에 겐자부로 선생님이 올해 (2023) 3월 3일에 타계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언젠가부터 나는 거의 모든 사람을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읽는 인간> 읽고 나니까 걍 '선생님' 소리가 절로 나더라.
"All right, then, I'll go to hell(그래 좋다, 나는 지옥으로 가겠다)." 지옥으로 가도 좋으니 짐을 배신하지 않겠다.
제가 영향을 받은 것은 이 한 줄입니다. 사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기 시작한 때는 할머니와 아버지가 연달아
돌아가신 해라, 저도 지옥이라는 곳이 가까이 있을 거라고 상상했던, 그런 환경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
습니다. 좋다, 나는 지옥으로 가겠다. 아이들도 이런 결심을 해야 하는 때가 있구나. 나도 이렇게 살아야지, 평생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겠어. 저는 다짐했습니다." (<읽는 인간>, 21p)
그리고 그는 정말 그렇게 살았다.
이 책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된 단어를 딱 하나만 꼽자면, grief, 비탄인데
아들 히카리가 어떤 식으로 그의 문학에 침투해 있는지가 아름다운 말로 적혀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와의 우정어린 교류,
'수상한 이인조'라고 말하는 영혼의 단짝 이타미 주조의 죽음을 소화해야 했던 시기의 이야기.
이 책은 알게 모르게 닥쳐 오는 인생의 풍파 속에서
한 사람이 끝까지 읽고 쓴 항해 일지 같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각오'와 고통과 기쁨에 대해서. 비탄에 대해서.
"우리는 노인의 지혜 따위 듣고 싶지 않다.
차라리 노인의 무모함,
어리석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는 문장(17p)을 읽으면서
담박에 그의 소설을 전부 읽겠노라 다짐했다.
늦었지만 그가 평안하기를 빌면서.
오른쪽 책을 시작할 엄두가 안 나서 (산 지 백년)
왼쪽 책을 빌려왔다. 난 가끔 이런 불쏘시개를 필요로 한다...
근데 왼쪽을 읽고 오른쪽을 읽을 생각을 하니까
왼쪽도 안 읽게 돼.
또 2주간 책 임보를 할 생각인지?
책을 품으면 뭐가 좋은데.
이 두 권은 얇으니까 이동중에 읽어야지~!~!
하고 빌렸는데 이동을 안 해 ...
얇고 가벼우니까 자기 전에 누워서 읽기 좋더라.
그래서 며칠째 <경찰관 속으로>를 자기 전에 누워서 읽고 있는데
내용은 결코 얇고 가볍지 않다. (저자를 비롯한 경찰분들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일기 쓰는 법>은 아직 안 읽었다. 훑어 보긴 했다.
타인이 꾼 꿈 얘기나 일기 내용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이 책이 일기를 묶은 책이었다면 안 빌렸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은 일기라는 형식의 글쓰기의 전반에 대해 다루고 있어서 빌렸다.
다른 사람이 어떤 식으로 일기를 쓰고 있는지는 언제나 관심이 간다.
아주 세세하게는 필기구나 노트같은 것부터
어떤 시간에 어떤 상태로 쓰기 시작하는지 같은 것.
아마 그런 얘기도 좀 나오는 것 같던데
읽어 보면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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