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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의 어머니들, <패러렐 마더스> 보다가 갑자기 뺨 맞기

조구만 호랑 2022. 4. 4. 03:33

너무 맘에 드는 포스터. (지금까지는) 올해 영화 중 최고.
"사랑하고 기억하리라 내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랬듯이"
한때 난리였던 저 디올 티셔츠

 

"사랑하고 기억하리라."

이 말은 때때로 큰 울림을 준다. 그런데,

"사랑하고 기억하리라 내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랬듯이." 

라고 말하면 어떤가. 

 

저 '사랑'과 '기억'을 담보하는 주체는 누구지? 싶어진다. 

주인공 여성 둘인가? 감독인가? 민족인가? 국민인가? 시민인가? 

인생 통틀어 제일 잠이 부족한 시절을 지나고 있는 임산부 여성 둘을 내세워

감독이 너무 자기 얘기만 하게 하려는 것 아닌가 싶었던 게

이 포스터에 대한 솔직한 내 첫 인상이다. 

대체 신생아가 뒤바뀌는 두 여성의 이야기가

이 전언과 무슨 상관인지 나는 알고 싶었다. 

 

이 영화는 크게 두 줄기로 이루어져 있다. 

1. 장기간 매복되어 있던 조상의 뼈를 발골하는 일. 

2. 아이가 뒤바뀌었음을 실토하고 바로 잡는 일.

 

중요도로는 

1번이 한강이라면 2번은 청계천 정도다.  

근데 이야기는 2번 중심으로 돌아가고, 

1번 이야기는 맨 앞과 맨 뒤에서 시작과 끝을 담당한다, 끝과 시작을.  

 

그런데 

2번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이야기 흐름을

1번으로 얼마나 매끄럽게 봉합해낼지 관객들은 기대하지 않나요?

그걸 위해서 누군들 노력하지 않겠냐마는 ...

있더라고요? 별 노력 없는 사람이 ...

이 72세의 스페인 거장이라는 감독님은 야니스의 고백 이후 

야니스와 아나의 관계 정리, 아이 문제 등등은 전화 통화로 끝낸다.

 

중요한 건 늬들 아사리판 애정문제가 아니고 역사야! 

이러면서 급선회 하는 느낌 ... 

네 ... 역사 중요하죠.

 

이 장면에서 매우 리얼한 무엇을 보았는데, 중요한 건 '무엇'이 아니고 그게 나 자신에 대해 가르쳐준다는 점인 것 같다.

 

2번이 해결되는 시점,

즉, 야니스가 아이가 뒤바뀐 걸 아나에게 고백하고부터 

고조 되던 갈등이 급격히 소강상태가 되는 것은 당연했는데

(러닝타임 3/4시점.. 이때부터 집 가고 싶음)

아나와 아나의 아이를 떠나보낸 후

약간의 구토와 눈물과 함께 집에 남은 야니스가 

처음에 등장했던 법의학자인지 고고학자인지 발골사인지(정확한 직업이 뭐더라...)를 불러들이는 것으로

이 이야기는 1번 줄기로의 합류를 시도한다. 약간 ... 이 부분에서 좀 엥? 스러웠지만 

내가 어떻게 이걸 봉합할지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어서 그러려니 했지 머. 

게다가 그는 또 직업이 직업인지라 ...  

은폐되어 묻혀 있던 진실을 밝히는 한 쪽 축을 담당하기에 리터럴리 적합한 인물인지라

구덩이를 파고 긁고 뼈를 브러쉬로 털고 체로 훑어서 

그야말로 쭉정이는 가라- 는 의지로 현장을 감독하면서 

불필요한 것을 가려낸 후 뼈만 남기기 시작했다. 

이 부분은 무척 감동적이었다. 정말이다. 

 

 

저 뒤의 그림 뭔지 너무 궁금하네

 

 

나는 그 즈음에서야, 

뼈무덤 발골 이야기가 마무리 되는 그 결말 부분에 이르러서야,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그래 결국 진실 찾기구나 싶었다, 다른 게 아니고. 

내 마음은 쑥대밭인데 ...

 

동지애, 죄책감, 뒤엉킨 모성애,

혹은 어른에 대한 동경이든, 굴절된 사랑이든 

혹은 마더 이슈이든, 혹은 대체로 호르몬의 문제이든, 

이 주인공 여성 둘이 나눈 것이 단순 접촉 사고였던 것처럼 보인다는 점.

보험 회사 불러서 괜히 보험료 올릴 것 없이

각자 적당히 수리하고 마무리하는 것으로만 보였다는 점 ...  

하여간 이 해프닝(으로 보이는 것)은 거대한 역사적 사명 앞에서

자연 소멸에 이르렀다.(혹은 그렇게 보였다.) 

이걸 물고 늘어지는 것이 옳은가? 모르겠다. 

 

 

맨 왼쪽 영화 <키카>에 나오셨던, 로시 데 팔마 분은 이 영화에서도 제일 멋졌다.

 

이 사람들을 느슨한 형태의 가족이라고 부르고 넘어가면 좋지 않나? 나는 모르겠다.

그 물음은 아나에게로 향해야 하는데 아나는 그다지 불만이 없어 보였다.

아나라는 캐릭터는 그의 출산배경, 성장배경과 더불어 

감독에 의해서도 방치된 면이 없지 않나 생각한다.

아나에게는 깨우침만을 주고 싶었나? 애정이 아니라. 

혹은 그가 그걸 사랑이라고 오인하고 있지 않나.

 

아나 역. 밀레나 스밋. 1996년생.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한창 영화에 빠져 있던 시절에 

주인공 야니스의 조상을 맨땅에 파묻은 바로 그 프랑코 독재정권이

영화 상영을 금지한 탓에 영화를 볼 수 없게 되었다는 비하인드를 알고 나니까 

극중 아나의 어머니가 우파 가문의 사람이라는 것까지 연결이 되면서

아나의 어머니가 배우들은 다 좌파라고 하소연하던 장면의 의미와 

야니스가 아나에게 "그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발작하듯이 화를 낸 것이 좀 이해가 됐다.

 

나는 영화에서 누군가 갑자기 화를 내는 장면을 좀 좋아한다.

표면적으로 그들은 켕기는 것이 있어서 그런 짓을 하는 것으로 나오기 마련인데 

실은 감독이 빙의된 것이다.

감독은 그렇게라도 발산하여야 할 무언가를 장전한 채로

100여분을 참은 것이다. 대단쓰 ...  

 

 

이 장면에서 나 또 탄식했네. 

야니스는 또 고고학자(?)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라고 했다.   

야니스 진심이야? 

 

암튼

병원에서 아기가 바뀐 것처럼 얼마 지나지 않은 사건에서도 

스페인 내전처럼 거의 84년이 지난 사건에서도 

엄마라는 존재의 속성은 거의 싱글맘이거나 완벽한 싱글맘이다. 

엄마라는 말에 싱글이라는 속성이 내포하지 않나 생각할 정도이다. 

 

강간으로 태어난 아이, 불륜으로 태어난 아이, 

혹은 전쟁 중에 태어난 아이. 전쟁을 겪은 아이. 

엄마들은 그 속에서도 아이를 키워 세상에 내놓았고 내놓는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자라서 비록 우당탕탕이지만

진실을 밝히는 쪽에 기여하는 사람이 된다

 

얼렁뚱땅 이러나 저러나 어차피 국밥이라는 심정으로 본다면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영화는 헿헤 하는 느낌으로 보면 된다.

그게 되면 본다도 괜찮다.

  

감독 자신이 오래 준비한 영화라는 글을 읽고 나니까

'그래, 그런 게 문제'라는 생각이다.

나 또 이 얘기해서 좀 그렇긴 한데

야니스 낌새가 이상하니까 아나가 이제 날 사랑하지 않냐 이런 질문을 하는데 

무덤 파야 한다고, 넌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할 때 

어쩐지 내가 뺨 맞는 기분이 들었다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얘기. 그래서 싫었다. 

 

 

+ 남은 의문들.

1. 스페인에서 가정부와 보모를 따로 두는 여자들의 월 수입은 얼마인가? 흔한가?

2. 야니스의 집에서 숙식하며 보모로 일하던 여자애를 쫓아낸 것이 의미하는 것은?

3. 아나에게 고백후 침대맡에 앉아서 약을 털어 넣을 때 랑콤 크림을 굳이 둔 것은 그저 ppl인가? 계급의 표현인가.    

 

 

크레딧 기세가 대단했다 레드 사랑
이렇게 많은 브랜드가 가세할 수 있나 싶었던 0
포스터 겟 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