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달리기를 좋아하는 편이어서
전부터 달리기를 하기는 했다.
간혹 하기는 했지만 꾸준하진 않았다는 얘기다.
그런데 런데이앱을 깔고 나서
본격적인 달리기 인생이 시작되었다.
먼저 런데이앱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1분도 달릴 수 없는 인간을 30분간 달리는 인간으로 개조해 주는
신박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달리기 어플리케이션이다.
누구나 가능하다는 게 핵심인데, 원래 인간은 달리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몸의 뼈 중 1/4이 발에 몰려 있을 이유가 없지 않을까?
발에만 26개의 뼈가 있는 이유가 대체 뭐란 말인가.
우리는 달리기를 잘해서 맹수의 추격으로부터 살아 남은 조상들의 후예 아닌가.
30분 달리기 절대 불가능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일수록
달리기에 대한 저항감이 크던데. 한 번 빠져들면 더 심하게 빠지더라.
여하튼 런데이앱에서 제공하는 8주간의 스케줄을 그대로 따라만 하면
나무 늘보도 어떻게든 달릴 수 있게 된다.
주 3회씩, 8주의 스케줄이다.
첫째날은 1분 달리고 2분 걷기를 4번 반복한 후
끝으로 1분을 더 달리면 된다.
개미핥기처럼 움직여도 일단은 성공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어물쩡 30분 달리기가 가능한 인간이 되어 있는 것이다.
과정 내내 보이스 코칭이 제공되는데,
내가 음악을 틀어 놓으면 코치가 음악 중간에 디제이처럼 튀어 나와서 멘트를 한다.
이게 별 거 아닌 거 같은데 또 꽤나 응원이 된다는 게,
타인의 목소리가 가진 힘이란 무엇일까.
(명언 파트는 좀 시끄럽다. 이건 설정에서 끌 수 있다.)
머리끈이 없으면 후드끈으로 묶고 달리고요
뛰다가 박살난 소주병도 보고요
초반에는 나이키 프리런(진짜 오래 신음, 근데 그냥 내 발 같은 착화감) 이랑
아식스 젤님부스21를 번갈아 가며 신고 뛰었다.
말이 나온 김에
잠깐 러닝화 얘기를 하자면,
나는 아치가 높고 평발과는 아주 아주 거리가 먼 발이다.
외전형 발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발바닥에 물을 묻힌 후 종이에 찍어 보면 알 수 있다. (아래 사진 참고)
일단 본인 발 모양을 알아보자.
외전형 발은 충격 흡수가 관건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런 발을 가진 사람이라면 발바닥의 움푹 파인 부분을 잘 채워서 쿠션감을 더해주는
쿠션화 계통의 러닝화를 신어야 한다고 한다. (반대로 평발에 가까운 발은 안정화)
보통 아시안에게 잘 맞게 나온다는 아식스를 나도 신고 달리지만 (님부스=해리포터 구름 탄 느낌임)
어쩔 수 없이 러닝화의 대세는 나이키인 것 같다. 킵초게가 나이키를 신지 않습니까. 어쩔 수 없이.
다만 주의할 것은 나이키는 발볼이 좁게 나오기에
5-10미리 정도 사이즈업이 필수라는 것.
장시간 달리다 보면 또 발이 붓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작은 신발은 신체 피로도를 증가시킨다.
요즘에는 아식스 젤님부스랑 템포 넥스트% 번갈아 가며 신는다.
아식스 젤님부스는 진짜 폭신한 느낌이라 걸을 때, 달릴 때 모두 추천이다.
무릎이 아파서 고민인 사람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다만 달리는 용도라면 본인 발모양을 잘 고려할 것.
나이키 프리런은 2013년도쯤 산 것 같은데 아직도 안 버렸다.
프리런 신고 달리면 땅을 박찰 때 느낌이 다르다.
프리런처럼 밑창이 조각 조각 나뉘어져 있는 러닝화는 충격 흡수 같은 건 못하지만
바닥에 단단히 붙어서 뛰는 느낌이라 발목 안정에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단시간 가볍게 뛸 때 적합한 러닝화다. 산책할 때도 괜찮다.
그에 비해 템포 넥스트는 무척 푹신하지만 쿠션이 높아서 발목이 불안정하다.
그래서 달릴 때는 좋지만 걷기에는 좋지 않다.
아래의 도표는 내가 러닝화를 고를 때 도움을 받은 표이다.
업무에 참고하세요~!
처음에 런데이앱에 빠져 있을 때는
새벽에 뛰고 밤에 또 뛰었고
줄 달린 이어폰을 링거처럼 달고 뛰기도
에어팟 끼고 뛰기도 했다.
원래 뭐 하나에 꽂히면 한놈만 패는 편이기는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코로나 스트레스가 나를 미친놈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샤오미 미핏을 이용해,
야외 달리기 모드로 놓고 뛰어도 충분히 기본적인 정보는 얻을 수 있지만 (심박수 체크 유용함!)
런데이앱에서 달린 거리, 소요 시간, 루트 같은 걸 기록해 나가는 재미가 쏠쏠했던 것 같다.
초창기에는 달리고 나서 간단하게 소감을 써두곤 했다.
슬슬 발동이 걸리던 시기.
초여름 길목이라 밤에 시원한 바람 맞으며 뛰는 게 그렇게 좋았다.
지금 생각해도 좋다...
그리고 땀 한 바가지 흘리고 샤워하면 잠이 잘 와서 더 좋았다.
그래도 가끔 불면증 때문에 괴로운 날들도 있었다.
오늘은 잘 달려졌다, 오늘은 몸이 무겁다, 오늘은 날씨가 어떻고 저떻고 ...
생리가 시작되었고, 끝났고, 성격이 어떻고.
달리면서 하루를 마감하면 온순해지는 것 같더라. (내가 나에게 그렇다는 얘기다.)
그리고 내가 늘 그렇듯,
좋다고 느낀 건 널리 알려 널리 이롭게 하고픈 기질을 발휘해
런데이앱을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다녔다.
런데이앱에서 친구 추가를 하면 누가 달리러 나갈 때 내게 알림이 온다.
그럼 응원을 할 수가 있는데, 달리는 사람은 박수소리를 듣게 된다.
이게 또 별 거 아닌 거 같은데 재밌더라.
뭐 별로 응원은 안 되고요... ㅎㅎ
그렇게 박수소리 들으며 일년여가 지나고, 지난 여름.
어느 날부턴가 마스크를 쓰고 헉헉 대는 게 싫더라고요.
그 날, 급격한 염증을 느낀 그 밤을 기점으로
나는 갑자기 아주 가끔만 뛰는 사람이 되었다. 권태기가 온 것.
사람이 되게 웃긴 게, 불편한 게 익숙해지면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러다 편한 걸 딱 한 번이라도 맛보면 다시는 불편한 상태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어느 밤에 사람 없는 트랙을 마스크 없이 몇 번 뛰어 보니
마스크 쓰고 뛰는 게 고문처럼 느껴지더라.
아마 그래서 그랬던 것 같다.
난 마스크 벗고 뛸 만큼 조심성이 없는 사람이 아닌데
내면에는 빨개벗고 저작거리를 전속력으로 달리고 싶은 무뢰한이 있어서
지난 가을에는 손에 꼽도록 뛰었고, 겨울에는 아예 뛰지 않았다.
지나고 보니 내가 내내 한 자리에 서 있었던 것도 아닌데
지나고 보니 그렇다, 그간 죽은 나무처럼 안으로 웅크리는 시기였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며칠 전 1월 27일부터 다시 러닝을 재개했다.
신발장에서 러닝화를 볼 때마다 죄책감을 느꼈고
아마 핸들링을 할 수 없을만큼 스트레스 지수가 치솟아서였던 것 같다.
(나에게 달리기란 불 끄는 소방차 같은 것인지)
아마 전에 느꼈던 염증이 희석될 만큼의 시간이 흘렀고
지겨웠던 달리기 루트가 흐린 기억이 될 정도로 시간이 흘러서.
(그러나 아직도 매일 다른 장소를 달리고 싶은 기분은 느끼고 있다.)
어쨌든 다시 달리니까 너무 좋아서, 또 달리기 뽕에 차서,
그래서 여기 추천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다른 일을 하느라 며칠 포스팅을 쉬었더니
말이 정말 많네요.
이해해 주셍.
내 나이.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고
그럼에도 아직도 모르는 게 훨씬 많은 나이인데
본격적으로 나이가 들면서 하나는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그건 바로 노화가 시작된 몸을 알아채는 방법이다.
이름하야 나만의 신체 노화 테스트. (모두 해보세요.)
내게 '어리다', 혹은 '젊다'의 기준이 뭐냐.
오늘 무리하면 내일 아픈 사람들이다.
오늘 근육운동을 하면 내일 아침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때부터 몸이 아픈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축하합니다.
당신은 아직 한창이다. 청춘이다. 여전히 팔팔한 몸을 가지고 있으니 안심해세요.
그렇다면 나이가 들면 어떤가.
노화란 그런 거더라. 피로마저 재깍재깍 도착을 안 하더라.
그게 오는데도 하루가 꼬박 걸리더라.
자, 본인이 여전히 한창인지 판단해보세요.
오늘 운동을 하면 내일 말고 내일 모레 아프기 시작한다.
(아닌데? 라면 이 글을 무시하고 좀 더 방탕한 생활을 하세요 / 하지 마세요.)
그러니까 27일에 달리기를 한 대가는 28일이 아닌
29일 아침 결제 승인이 되었고, 오랜만에 몸이 욱신대기 시작했다.
내게 다리가 있고, 거기 근육이 있다는 걸 오랜만에 감각했다.
왜냐면 근육이 아팠으니까.
그런데 나는 그러다 문자 하나를 받는다.
잠시 후 오전 10시 버추얼 러닝이 시작된다는 문자.
황망했다.
27일, 달리면서 햇볕도 따뜻하고 바람은 상쾌하고, 왜 이 좋은 걸 그간 하지 않았을까 싶었고,
28일 아침, 몸이 깃털처럼 가벼운 나머지 눈 뜨자마자 별 생각없이 런데이 앱을 켜서
온라인 실시간 마라톤을 신청한 것이다.
순간 살짝 후회가 되었다.
몸이 좀 천근st여서 ... 가벼운 몸으로 뛰고 싶은데 ...
그래서 어떻게 했냐면 ... 걍 생각을 정지하고, 곧장 뛰러 나갔다.
다만 카페인을 좀 들이 부은 다음에.
달리기가 내게 가르쳐 준 거,
지금 아니면 나중은 없다는 거.
더 훌륭한 내일보다 모자란 오늘의 실천을 하라는 거.
그런데 이 말은 생각할수록 무서운 말이었다.
얼핏 미루지 말라는 가벼운 충고인 것 같지만
곰곰히 생각하다 보면 (이것도 달리는 와중에 생각했다)
모자라나마 오늘 실천해야 내일의 훌륭함을 기대라도 해볼 수 있다는 얘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달리면서 결심했다, 2월은 매일 달리기로.
그리고 지금 4일째 꼬박 달렸다.
실제로 옆에서 누가 함께 달리면 좋겠지만
혼자 달릴 때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지구 어딘가에서 지금 누군가 반드시 달리고 있다 ...
건강한 습관을 만들고는 싶으나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막막한 사람이라면
당장 런데이앱을 깔자. 그리고 저를 친구 추가하고 (농담), 운동화를 꿰어 신고 나가자.
그냥 해, 라고 말하는 나이키처럼.
끝으로 29일 버추얼 러닝의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5K 다 뛰고 마스크 안에서 딘딘처럼 숨 쉬면서 집에 갔다. 오랜만에 힘껏 달려서 허파가 쪼그라 드는 느낌이었지만 그 맛에 달린다. 2월 22일에도 런데이 버추얼 러닝이 있다고 하니 관심 있으신 분은 ㄱ ㄱ .
https://runday.co.kr/marathon/2022x2race
- 런데이앱에서 음악 재생 하는 법 -
혹시 런데이앱에서 음악 재생하는 방법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1. 본인이 사용하는 스트리밍앱 등에서 음악을 켜고
2. 그 상태에서 런데이 앱을 켜고 실행하면 자연스럽게 오버랩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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