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겠다. 이런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기꺼이 동기화 되고 싶은 고통이라는 게 저마다 다르지 않나.
'새로운 다이애나비 이야기'라는 카피를 읽고도
다이애나비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
함께 고통 받고 싶은 마음이 별로 들지 않았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게 된 건
99.9% 포스터 증정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남은 0.1%는 나의 충동적 기질.
간혹 특정 배우에 대한 팬심으로 영화를 보기도 하는데
이번의 경우에는 그런 것도 아니었다.
나는 지금껏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말 그대로 신들리는 연기,
뭐에 씌이거나 홀리는 연기를 보여줄 때마다 그다지 흥미롭지가 않았다.
배우에게는 실례되는 말이지만 그보다 늘 그 자신이 더 커 보였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를 (실제라고 생각되어지는) 그 자신과
스크린 속 역할의 대비감으로만 가늠하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보다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가 어떤 역할을 아주 진지하게 수행하려고 하면 약간 뒤로 물러서게 되었다.
하여간 이래저래 딱히 흥미가 생기는 영화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A3 사이즈 포스터를 준다기에 충동적으로 영화를 보러 갔다.
정확히 갖고 싶은 버전의 포스터가 있었기 때문.
바로 아래의 포스터.
이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다이애나비는
실은 변기통을 붙잡고 토하는 중이더라.
그 사실을 알고부터 위 포스터가 갖고 싶었다.
영화 속에서 다이애나비는 반복적으로 무언가를 토하고, 터트리고, 긋는다.
매 식사와 각종 행사마다 스케줄대로 정해진 의상을 입어야 하고
옷을 갈아 입을 때는 바깥에서 보이지 않게 커튼을 잘 쳐야 한다.
급기야 왕실은 커튼을 꿰매버리는데
그는 숨을 오래 참기 힘들다는 듯 여며진 커튼을 단숨에 터 버린다.
바깥에서 보면, 커튼을 닫는 것은 일견 보호처럼 보이지만
안쪽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구속이다. 사람을 안쪽에 가두는 일이다.
다이애나비가 닫혀 있던 커튼을 열고 바깥 공기를 마주했을 때
이제야 피가 통한다는 얼굴을 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 기세로 팔 안쪽을 그어 버린다.
이제야 피가 통한다는 듯이, 그걸 스스로 실감해야겠다는 듯이.
왕실의 다이애나비는 살아있는 것을 느끼기 위해 스스로 긋는 사람이고,
언제나 가장 늦게 도착하는 사람이다.
그는 영화 초반에 길을 잃는다.
그리고 본인이 어디에 있는지 다른 사람에게 묻기를 반복한다.
밤에 홀로 바깥을 서성이다가 경계 철책에서 경찰과 마주하자
"고스트를 봤다고 하세요." 한다.
나는 이 장면이 좋았다.
왕실의 다이애나비의 처지를 실로 간명하게 보여준다.
유령에 다름 아닌 존재로 거기 있는 사람.
밤이 늦도록 서성이는 한 사람.
유령은 늦게 나타나고, 두 번 나타나는 존재라고 어디서 봤는데.
모르긴 몰라도 그럴 것이다, 고스트는
그 장소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존재일 것이다.
멀리서 보면 그저 풍요롭고 화려한 것들에 둘러싸여 있는 왕세자비는
정작 '미래가 없는 곳'에서 추위에 떨며 어깨를 웅크린 채
'손에 잡히고 만져지는 평범한 것들'에 둘러 싸이는 기쁨을
영원히 유예중이기 때문에,
그가 늘 화가 나 있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그러나 모두가 웃고 떠드는 장소에서 혼자 화가 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사람이 미친 사람처럼 보일까.
그리고 정말로 미친 사람은 누구일까.
그가 계속해서 분노하는 이유는
표면적으로 찰스와의 불화,
그의 신실하지 못한 태도,
왕실의 지속적인 감시와 기만,
노출되고 드러난 프라이버시 문제 때문인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진실을 마주하고 결단을 내릴 중대한 기회(?)를 찰스가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뚫고, 끊고, 선을 그어 앞으로 나가는 데 주저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처럼 보였다.
위의 포스터는 그런 내전을 겪는 중인 다이애나비의 내면을
우회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한 포스터라고 생각했다.
영화 <스펜서>에는 별다른 반전이 없다.
결국 다이애나비는 '스펜서'라는 이름을 스스로 되찾는다.
그런데 내 얘기에는 반전이 있다.
내가 받은 것이 위의 포스터라는 것이다.
만약에 영화를 보기 전에 위의 포스터를 받았다면,
난 섣부르게 실망했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난 후라서 ...
영화 안에서 저 옷이 지녔던 상징성을 어렴풋 이해하고 나서라서.
저 노란 수트를 입고 모자가 벗겨지도록 전력질주하는 다이애나비를 이미 보았고
가장 나중에 저 옷을 입게 되는 것이 너른 벌판의 허수아비라는 것을 보고 난 후라서.
그래서 이 포스터도 마음에 들었다.
포스터를 고이 고이 받아 들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저 옷은 항해를 테마로 한 의상이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저 모자를 쓴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마도로스처럼 보이기도 한다.
궁궐에 갇힌 항해사.
이보다 정확히 (한 시절의) 다이애나비를 표현할 수 있을까.
그리고.
영화에서 아- 싶었던 부분이 있었다.
정해진 의상 스케줄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검은 베일과 빨간 투피스를 입고 행사에 간 다이애나비가
엄청나게 많은 남성 파파라치(?) 프레스(?) 앞에서 플래쉬를 온몸에 받으며 사진을 찍히는 장면에서
나는 다이애나비의 최후의 순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는 그저 3일간의 일화를 늘어 놓고 있을 뿐이지만.)
실제 크리스틴 스튜어트라면 저 앞에서 저렇게 포즈를 취하며
인형처럼 서 있지는 않았겠지 반쯤 분개하면서.
나중에 이혼을 하고 자유를 되찾은 다이애나 스펜서는
연인의 차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한다.
사고현장에는 그 모습을 목격한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모두가 다이애나비를 찍는데 혈안이 되어
자연스럽게 구조 요청은 늦어졌고 그러는 사이 그는 사망했다는 이야기.
아주 짧은 순간, 플래쉬를 한 몸에 받는 다이애나비의 모습이 티비를 통해 송출되는 장면에서
나는 이 장면과 저 장면을 연속적으로 생각해 보고 있었다.
어떨 때는 플래쉬가 발사된 총처럼 보인다.
그리고 또, 아 - 싶었던 일.
빗방울이 좀 떨어지길래 별 생각없이 바버자켓을 입고 영화를 보러 갔는데
영화 속 영국 왕실 사냥 장면에서 우르르 몰려 나오는 웰시코기들과 함께
한 무더기의 바버 군단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바버를 입은 왕실의 직원들을 보며 충직한 궁궐 직원이 된 기분이었다.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이렇게 많은 바버 자켓을 본 건 처음 있는 일이어서 사실 좀 좋았고 ...
영화 <스펜서>는 훌륭한 바버 카탈로그이기도 하다는 점.
그러다 허수아비가 걸치고 있던 아버지의 바버 자켓을
떨쳐 입고 나타난 다이애나비가
새(꿩) 사냥이 싫다던 아들을 사냥터에서 구출해낼 때,
이 영화가 다른 무엇보다도
'옷'을 통해 '힘'에 대해 말하고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옷을 입는다는 것은 부여된 역할을 수행한다는 의미이기에
다이애나는 주어진 옷을 거부하고 스스로 선택한 옷을 입는 위반을 감행함으로써
스스로 원하지 않는 일을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강요하는 문화에 착실히 길들여진
아버지 찰스로부터 아들들을 분리해내는데 성공한다.
이 영화에서 찰스의 포션은 크지 않지만 (잔잔바리로 깔린 기분나쁜 안개같다...)
아마도 찰스라는 인물은 평생 '하기 싫은 일을 해내는 것'으로
본인이 절대 '하지 않아야 할일을 하는 것'의 면죄부를 스스로 부여한 인물처럼 보인다.
그런 걸 우리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 욕구불만 애새끼?
19살에, 이 30살의 애새끼와 결혼한 이래로 11년이나 흐른 시점 ...
다이애나가 더 이상 참지 않고 갑갑한 허물을 벗어 던지는 순간을
이런 영화를 통해서라도 보고 싶은 마음을 그래서 어느 정도 이해했다.
하지만 찬찬히 눈여겨 보지 않으면
다이애나비에 대한 사전정보가 적으면 적을수록
다이애나비야말로 욕구불만에 빠진 애새끼로 보일 위험이 있는 것 같다.
그 영향으로 이 영화가 그저 패션 카탈로그처럼 허망하게 느껴질 위험도.
크레딧이 올라갈 때 샤넬CHANEL이 있어서 좀 웃겼다.
이 영화는 틀림없이 섬세한 고증을 통해
다이애나비가 그 시절에 애용했던 의상을 재현한 것 같았다.
정말로 다이애나비는 샤넬을 즐겨 입고 들고 했던 것 같고.
그런데 이혼하고 궁을 떠난 다이애나 스펜서는 샤넬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전 남편 찰스와 그의 오래된 연인 카밀라의 이니셜이 C였기 때문에,
샤넬의 C만 봐도 진절머리 난다며.
그런데 뭐 꼭 그래서였을까.
왕실생활을 샤넬이라는 브랜드랑 함께 했었다면
샤넬을 보기만 하면 트리거가 되니까 그랬겠지.
솥뚜껑이 된 거지, 샤넬이.
그러니까, 영화 <스펜서>는
이런 트리비아에 강한 사람일수록
영국 왕실 문화 오타쿠거나
패션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그리고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 같다.
잠깐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얘기로 돌아가자면,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다크서클은 늘 심상치가 않았는데 (좋은 의미로)
이 영화에서도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너무 크리스틴 스튜어트여서
그가 다이애나비를 얼마나 근접하게 수행하는지를 뒷짐 지고 보게 되었다고 해야할까.
바꾸어 생각하면, 어쩌면 그가 다이애나비로 캐스팅된 것이 이런 이유였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실제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여러 행보들과 폭발하는 에너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그를 이렇게 방에다 가두고 커튼에 타카질을 하고 자꾸 밥이다 디저트다 먹으라 부르고
결국 사냥 당할 예쁜 꿩처럼 살찌우려 들고 인형놀이를 해대서 애한테 스트레스를 줘가지고
자꾸 토하고 싸돌아다니다 폭식하게 하고 ... 빈 집에 들어가게 하고 ... 죽고 싶게 하고 ...
이런 심정으로 보게 되는 효과가 있지 않은가 하는 거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고통 받는 역할을 제일 잘 하는 사람은
그런 옷을 입다가 벗어던진 적이 있는 사람일테니까.
근데 해변가의 뭔가 애매한 풀숲에서 메기(샐리 호킨스)로부터 사랑 고백을 받는 순간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찐텐이...
뭐랄까 진실된 표정이 나오면서 진짜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나와버려서
여기서부터 영화가 재밌어졌거든요?
근데 이미 거의 막바지였다. ㅎㅎ
다이애나, 당신의 무기는 당신 자신이에요. ('전하'라는 번역은 좀 어색했다 ㅎㅎ)
메기가 이 말을 할 때, 난 머야? 왠지 좀 뜬금 없다고 느꼈는데.
왜냐면 메기는 왕실의 지시대로 왕세자비에게 옷을 입혀
왕실이 부여한 역할을 수행하게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런 말을 막 하면서 ... 다이애나가 자기 혁명을 이룰 수 있게 돕는다. 라 ...
이 이중적인 캐릭터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가 바로 '메기'였다,
다이애나 스펜서가 아니고.
메기 왈, 당신의 무기는 당신 자신이다. 왜냐하면 나는 전하의 알몸을 다 봤으니까.
그 얘기 아닌가? 당신은 몸이 멋지다? (농담)
흠흠. 암튼.
<스펜서>는 아무 정보 없이 맞닥 뜨릴 영화가 결코 아니다.
위키피디아라도 훑어 보고 가시는 걸 추천합니다.
기본적인 다이애나비의 히스토리를 알면 알수록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다이애나비-되기의 노고가 (더불어 그 어긋남이) 또렷하게 감지된다,
의상 고증과 더불어
그가 몸에 배게 하려고 노력한 다이애나의 각종 버릇의 싱크로율에 감탄하게 된다.
그러면 다른 감도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찰스랑 다이애나가 신장이 똑같던가, 다이애나가 더 크던가? 그래서
찰스가 다이애나 높은 굽 안/못 신게 했다는 얘기 같은 거 읽고 가세요.
굽은 등을 이해하게 됩니다.
끝으로, 마지막 장면.
두 아이들을 차에 싣고 다이애나 스펜서가 KFC를 향해 달릴 때 차 안에서 나오던 노래
"ALL I NEED IS A MIRACLE"의 가사,
'내 남은 평생 당신을 그리워 할거야'를 듣고 있으려니까
다이애나가 어렸을 때 살던 집에 굳이 기어 들어가서
썩은 계단에서 진주 목걸이를 뜯어내던 장면,
그게 바닥으로 쏟아져 내리던 순간이 떠올랐다. 폭발의 순간.
아마도 다이애나 그 자신이 쌓아온 것, 동시에 영화가 응축해온 에너지는
이 순간 허물어지기 위해 달려온 것이겠지.
그런데 내가 흥미롭게 본 것은
그럼에도 여전히 와락 쏟아지지 않고
뒷목 어딘가에는 진주 몇 알이 남아 있던 것.
그것들은 다이애나가 다시 앞으로 걷기 시작할 때
아래를 향해 곤두박질 치기 위해 예비되어 있다.
다이애나 그 자신이 떨어지려고 했던 그 계단 위에 말이다.
내내 짐이었던 것. 내내 고통이었던 것.
내가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을 온 세상이 흥미롭게 지켜보는 고통에 대해서.
그 모든 것들에 안녕을 고하고 다른 존재로 나아가기 직전에 도달한
한 여자의 이야기. 99.9도와 100도 사이에서.
그래서 이런 가사가 나오는 음악을 마지막에 넣었나보다.
ALL I NEED IS A MIRACLE ... IS YOU.
어찌 보면 물이 끓기 시작하는 것도 기적인 것.
다이애나 스펜서는 비록 지금 이 세상에 없지만,
누군가 힘껏 다른 존재가 되려고 할 때마다
그가 필요한 건 오직 기적이며 당신 그 자신이라는 사실.
그러니 남은 평생은 그가 남기고 온 자기 자신을
그리워 하며 살아가게 되어 있지 않나.
때로 진절머리 치면서.
+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화이트 가죽 코르테즈 귀엽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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