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 영화 혼자 봤어. 라고 말하면
너 원래 영화 혼자 보잖아. 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당연하지. 나는 혼자 영화 보기 대장으로 소문이 난 모양이니까.
근데 이번에는 그런 뜻이 아니었다.
관객이 나 하나였다고!
관객이 저 혼자였다고요!
그렇다. 나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를 독대하고 말았다.
처음에는 으스스한 기분으로 앉아 있다가
영화가 끝에 다다를수록 나 말고 아무도 없는 상영관에서
꼭 누군가와 함께 있는 기분이었다는 이야기를 쓰려고 (굳이) 포스팅을 한다.
그리고 며칠간 영화의 에네르기파가 나 자신을 초과해버린 기분이 들어
밤에도 스탠드 켜고 잤다.
'창녀'로 부르든
'위안부'로 부르든
'귀신'이라 부르든 '유령'이라 부르든.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살해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없던 일로 해 버렸던 일.
생존 피해자가 그 사실을 증명하기 위하여
법적 타당성과 무결성을 갖춘다는 것의 불가능성.
그렇지만 우리가 그걸 알게 된 이상
우리에게는 기억해야 할 책임이 생긴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기억하는 것으로 고발하는 것, 그에게 서사를 부여함으로써 피해자를 홀로 두지 않겠다는 다짐
이 이 영화의 핵심이라면
호러 판타지라는 이 영화의 형식은 다큐가 반드시 내포해야 하는 사실의 테두리에
여분의 오차범위를 허용하면서 극명한 사실의 징검다리를 건너지 않고도
진실에 도달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도달한 곳에는, 목을 잘라 질질 끌고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 머리를 제물로 기리고 싶은 영혼들이 드글드글 했다.
그러니까 이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의 장르는
사실 '제의'였던 것 같고
나는 단상에 향을 피워 올리는 마음으로 C27에 앉아 있었다.
전날 읽은 책이 <남성성의 각본들> (허윤, 2021, 오월의 봄)이었던 점.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두 챕터가
박정희 정권이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거느리기 위해 행했던 여성 혐오에 관한 얘기였던 점.
'미군 위안부'를 통해 형제 관계를 맺었던 한미동맹의 그늘에서
여자들이 어떻게 오물을 뒤집어 쓰고 죽어갔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던 점.
이 작은 우연이 신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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