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일드가 지독하게 재미 없어졌다.
막상 내가 변한 건가 싶다가도
오로지 재미만을 기준으로 삼았다면 보지 않았을 드라마를
그간 지긋한 애증 혹은 애정으로, 더 정확히는
관성으로 봐 왔다는 걸 알고 있다.
근데 최근에 재밌게 본 일드가 있어서 소개해 본다.
<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과 <박새 ~ 사십부터~>.
딱 두 편이다. 나는 '도라마 코리아'로 봤다.
'도라마 코리아'는 유튜브 같은 시스템으로,
광고를 보기만 하면 무료로 일본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앱이다.
1. <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
이 드라마는 에이로맨틱이자 에이섹슈얼인 두 사람이 만나
연애가 아닌 방식으로 가족이 되는 과정을 그린다.
주변 인물들과 좌충우돌 하며
서로에게 베이스캠프가 되어 주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
(*에이로맨틱: 다른 사람에게 연애 감정을 느끼지 않는 사람)
(*에이섹슈얼: 성지향성중 하나로, 성적 이끌림을 느끼지 않는 사람)
정작 두 주인공은 성적 이끌림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서로를 산뜻하고 담백하게
인간 대 인간으로 대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주인공들의 성적 텐션과 고조 범벅에 익숙한 시청자(=나)는
초식동물의 초원에서의 한 때 같은 둘의 모습이 그저 흐뭇하다가도
어느 순간 아 지금 무언가 부족하지 않나 생각하게 되더라.
아마 이게 관전 포인트가 아닌가 한다.
그런 나의 둔감한 감수성과 한계를 실감하며
무엇이 나를 부족하게 느끼도록 만드는지 생각하게 됐다.
연애 혹은 결혼.
혹 정상이라는 이름으로 과대평가 되어 있는 것들에 대하여.
이 드라마는 그런 생각할 거리들을 경유하여
'가족'이란 뭔데? '상냥함'이란 뭔데? 되묻는다.
가족 사랑 (연애x) 드라마이자, 일종의 시민 정서 교육 드라마. ㅎ
2. <박새 ~ 사십부터>
이 드라마는 마흔살 여성 만화가와 18세 연하 남성의 만남을 그린다.
이 마흔살 여성은 멍청하고 폭압적인 남편과 살고 있고
스물둘의 남성은 일생 도움이 되지 않는 철부지 엄마와 살고 있다.
둘은 잘못된 인연으로 얽혀 있지만
서로가 성장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불륜을 표방하고 있지만
이야기의 힘(만화 그리기)으로 자신의 힘을 되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힘으로 다른 사람이 되어 가는 이야기다.
이 드라마는 일견 그렇고 그런 이야기로 여겨질 수 있는 서사적 한계를
신선한 연출, 훌륭한 그릇으로 극복해내기 때문에 꼭 직접 봐야 한다.
보는 내내 흥미진진했다. 관능적인 텐션이 높은 동시에 불쾌감 묘사도 탁월하다.
드라마 앞에 경고문구도 재밌다.
어린애들은 교활해서 자신이 어른을 속였다고 생각하지.
그런데 어른은 그걸 이용하는 거야.
아직도 이 대사가 나왔던 장면을 잊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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