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비

2021년 연말에 읽을 책 3권

조구만 호랑 2021. 12. 27. 15:41

이번달 구립 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한 책은 4권이었다.

그런데 한 권이 취소되어 있었다.  

그 책은 바로 아래의 책.

사치 코울, <어차피 우린 죽고 이딴 거 다 의미 없겠지만> 이었다.

 

희한한 일이지만, 도서관 사서분에게 물어보진 않았다. 

 

SCAACHI KOUL, <One Day We'll All Be Dead and None of This Will Matter> / 사치 코울, <어차피 우린 죽고 이딴 거 다 의미 없겠지만>

이 책을 읽기로 마음 먹은 건 이 문장 때문이었지만, 

 

"하지만 솔직히 나는 그저 외로웠을 뿐이다. 내 글을 세상에 내보인 뒤 트위터를 체크하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너무나도 끼고 싶은 대화에 못 낀다는 뜻이었다. 나는 내가 놓친 게 무엇인지, 내가 뭘 말아먹었는지, 다음번에 내가 뭘 더 해야 하는지를 알고 싶었다. 나는 내 글이 당신의 외로움을 덜어줄 만큼 희망적이었는지 알고 싶었다."

 

사실 이 책은 이 문장보다 훨씬 웃기다. 가족, 남자친구, 결혼, 여성혐오, 성폭력, 인종차별에 대해서 폭 넓게 이야기 해가면서 이 모든 것이 자신을 만든다고 말한다. 특히 아빠와의 대화가 웃기다.

 

"햄 군이 반전을 기대했단 걸 알고 있다. 가령 아빠가 햄 군을 보자마자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어쩜 그렇게 완벽하냐! 제발 내 딸을 데려가다오! 자네의 강인한 등짝과 탄탄한 종아리를 살짝 보는 순간 내가 수십 년 동안 지켜온 문화적 규율의 조항들과 도덕심에서 발현된 거부감이 사라졌다네!”
하지만 그럴 리가 만무하니, 우리는 아빠 문제를 앞으로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빠의 입장은 초긍정적인 관점에서는 ‘차라리 자기 등 뒤에서 몰래 사귀어라’ 정도였지만 최악의 경우는 ‘지금보다 더 의미 있는 관계로 발전하는 것을 절대 반대한다’였다.
“이제 어쩌지?” 햄 군이 물었다.
“내 생각엔,” 내가 답했다. “좀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자.”    

 

이름이 매력적인 이 91년생 인도계 캐나다 저널리스트 여성의 글을 읽다가,

문득 넷플릭스 드라마 <네버 해브 아이 에버>가 떠올랐다.

 

미국인과 인도인의 정체성을 오가는 데비 

<네버 해브 아이 에버>는 부모가 인도를 떠나 서구에 정착한 2세대 인도계 미국인 청소년 데비의 이야기다.

데비는 사고로 아빠를 잃는다. 그 때문에 인도로 돌아가 가족의 서포트를 받으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고 생각한 데비의 엄마 날리니는

단골 환자들의 명단을 다른 의사에게 10,000달러에 넘기기로 하고 새 병원을 개업하기 위해 인도를 미리 방문하는데,

자신을 지지해줄거라고 믿었던 가족들은 날리니에게 나이 든 남자와의 재혼을 권한다. 날리니는 자신이 인도를 떠나 있는 동안 인도를 추억

하면서 좋은 것만 되새기며 간직하고 부풀려 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에피소드(시즌2 - 2화). 1세대 이민자들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에피소드였다. 사람은 자신의 뿌리를 찾으려고 하는 동시에 안전한 장소를 찾아 떠난다. 어떻게 보면 고향이라는 건 마음 속에서만 빛나는 것 아닐까. 찬찬히 돌이켜 보면 반드시 떠나온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한편, 사고뭉치 데비는 착실하게 성장중인데 그 기간이 곧 아버지를 진짜로 떠나 보내는 애도의 기간이기도 해서 웃다가 문득 코끝이 찡해지는 에피소드들이 있다.  

 

사치 코울의 에세이를 읽고, <네버 해브 아이 에버>를 봐도 좋을 것 같다. 민디 캘링의 드라마들도 좋을 것 같고...라고 쓰면서 느낌이 이상해서 찾아 봤더니, <네버 해브 아이 에버> 역시 민디 캘링의 작품이었다. ㅎㅎ 덕분에 <네버 해브 아이 에버>의 19금 버전 드라마도 HBO max에서 한다는 걸 알게 됌. 섹스 라이브즈 오브 컬리지 걸스(The Sex Lives of college girls). 역시 민디 캘링. 기회가 된다면 보는 걸로.  

 

No rules. No regrets. 강렬하다. ㅎㅎ

 

                 Ling Ma, <SEVERANCE> / CATHY PARK HONG, <MINOR FEELINGS> / NICK CHATER, <THE MIND IS FLAT>

 

링 마, <단 절> / 캐시 박 홍, <마이너 필링스> / 닉 채터, <생각한다는 착각>   

 

자자. 어쨌든 다시 책 얘기로 돌아와. 

 

1. 링 마, <단절>

 

 SF소설. 디스토피아. 중국에서 유래한 신종 질병인 '선 열병' 때문에 종말이 온 사회를 그린다. 코비드19의 세계와 맞물리는 설정이구나 싶었는데 2018년에 출판된 책이라고 해서 좀 놀랐다. 책의 시대 배경은 2011년이고, 장소는 뉴욕이다. 이 책 또한 이민자들의 이야기이고, 좀비가 아닌 좀비들의 이야기이고, 후기자본주의의 세계의 '영혼없음' 대한 이야기다. 지금 176페이지까지 읽었는데 올해 안에 끝내야지.  총 471페이지의 짱짱한 데뷔작을 읽는 즐거움이 있다. 다 읽고 이 소설에 대해서는 추가 포스팅 할 생각.

2021년 11월 19일 출간되었다. 

 

2. 캐시 박 홍, <마이너 필링스> 

 

 한국계 미국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라고 한다. "내 책은 통증의 강도에 따라 평가받는다. 강도가 2라면 굳이 내 얘기를 풀어놓을 가치가 없을 수도 있다. 만약 10이라면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다." 라는 문장이 인상적이었는데,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을까? 나는 아직 이 책의 1페이지도 펼치지 못했지만 이 책의 부제가 이미 나를 사로잡았다. "부제: 이 감정들은 사소하지 않다" 

2021년 8월 17일 출간된 책이다. 

 

3. 닉 채터, <생각한다는 착각>

 

  이 책의 원제가 'The mind is flat'인 걸 보면 꽤나 도발적인 이야기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책 소개를 읽어 보았는데 역시나 그런 모양이었다. 정신분석학 개론 같은 수업에서 배웠던,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을 바다의 표면과 저 아래 숨겨진 빙하의 크기로 묘사하던 책들은 이제 불태워야 하나? 우리에게 심오한 정신적 깊이라는 것은 없다고 이야기 하는 책. '표면' 아래로는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가 어쩐지 조금 안심이 되기까지 한다. 나만 얕았던 게 아닌 것 같아서. 이 책 역시 아직 1페이지도 읽지 못했는데 올해가 가기 전에 완독하기로. 

 

"여기서 끌어낼 명백한 결론은 우리가 내면의 기록보관소를 참고해서 행동을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보다는 생각과 행동, 행위를 설명하기 위한 과정은 창작의 과정이다. 그리고 심상과 마찬가지로 창작의 과정은 너무나 빠르고 매끄러워서 우리가 정신적 깊이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쉽게 상상할 정도다. 하지만 우리가 마음속에 생겨나는 어떠한 질문(호랑이 꼬리는 어떻게 휘어 있는가? 네 개의 발 모두 땅에 붙이고 있는가? 발톱을 드러냈는가, 숨겼는가?)에도 대답하기 위해 ‘그 순간에’ 이미지를 다시 고치고 만들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당화가 필요한 생각들이 떠오르는 한 그 타당한 이유를 만들어낼 수 있다. “왜 세금 인상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글쎄, 어쨌든 그 사람들은 세금을 거의 내지 않고 공공서비스로부터 과하게 도움을 받겠지. 또는 그 반대로, “왜 세금 인상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해가 될까?” 분명 이들은 거의 돈을 낼 수 없을 것이고, 조세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타격받을 가능성이 크니까. 해석기는 어떤 경우에든 양쪽 모두를 논증할 수 있다. 마치 유능한 변호사처럼, 무슨 일이 벌어지든 당장 당신의 말과 행동을 기쁜 마음으로 옹호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가치와 신념은 결코 상상만큼 안정적이지 않다.
<생각한다는 착각> , '선택을 만들어내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