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첩을 정리하면서 뜻모를 사진들이 잔뜩 있어 놀랐다.
감정이 옮겨 붙지 않는 것들을 찍으려고 했던 것 같다.
이것이 마지막 만남일지 모르는 사람을 빼고 나면 정말로 찍어야 할 건 없었으니까.
즐거웠던 마음 반, 애달픈 마음 반이었다.
즐거움은 숨기지 않아도 좋았지만 애달픔은 숨겨야 했을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나는 최대한 중요한 것은 찍지 않으면서 그 자리를 메울 무언가를 찍었던 것 같다.
인물 사진을 빼고 나니 남는 게 한줌인 게 웃기다.
내가 얼마나 사람 곁에 있으려고 하는지.
내가 얼마나 사람을 좋아하는지.
내가 얼마나 사람을 필요로 하는지.
찍은 사진을 보면 투명하게 드러난다. 정말 싫다.
3개월만이었나? 탄수화물 치팅.
단백질 비중이 높은 곳을 고르다 보니 채선당에 갔는데, 감자칩이 정말 맛있었단 얘기.
전주까지 갔는데, 채선당에 갔고, 예약을 안 했지만, 했어야 한다는 얘기.
JOY와 CINEMA 사이에 N이 지워져 있었다.
그치. 영화가 즐거움 그 자체는 아니지.
엘브즈에서 양말 사던 중고딩 시절이 생각나 찍었다.
굳이 이 앞을 지나며,
굳이 이 건물을 찍으면서 기분이 이상했다.
전주사람을 식별할 수 있는 마법 단어가 몇 개 있다.
그걸 여기 쓰진 않을 거지만,
같은 시기, 같은 장소에 있었던 사람들이 공유하는 디테일한 정보들은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다.
그 정보가 대단히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이 아니고, 정말로 하찮고 사소하기 때문이다. 그런 건 기록에도 남지 않기 때문에.
그러고 보면 픽션이란 얼마나 납작해지기 쉬운가 잠깐 생각했다.
몇 년 전 전주국제영화제 때, 후배들과 갔던 동영커피를 다시 찾아갔다.
여긴 소금라떼가 유명한 곳인데, 나는 라떼를 안 마신다.
카운터에서 엄마한테 소금라떼를 강권했다.
난 그런 인간이다. 계산은 내가 했으니까 됐지 뭐. (폭력배...)
사실 이 길은 그 전날에 혼자 찾았기 때문에 (아니 우연히 지나감)
당일에 잘 찾을 거라고 내심 기대했는데, 결국 헤맸습니다.
지도앱 켤 생각은 안 들더라고요. 얼렁뚱땅 잘도 살아왔다...
오래된 건물의 계단은 늘 너무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수학처럼., 음악처럼.
나를 다른 세계로 보내줘.
저 간판, 객사빵을 보자마자 객사빵을 사자! 했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먹고 싶었다, 객사빵.
늘 있던 가게들 사이에서 새로 생긴 가게가 새로 난 덧니처럼 눈에 확확 들어오면 아는 거리라는 얘기.
오랜만에 익숙한 거리를 둘러 볼 때의 기분은 단체 사진에서 친한 친구를 찾아낼 때의 기분이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는 정말로 시시한 것, 별 거 아닌 것이 랜드마크만큼 중요하게 느껴진다.
택시 안에서 언뜻 봤는데도
대게나라에서 김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이 느와르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산신령 할배가 나올 기세.
사실 나는 택시 탈 때마다 곤욕이다.
내 돈 내고 불친절한 나이 든 남자와 동승할 이유를 모르겠다.
왜긴 왜야... 넌 운전을 안 하고, 그가 운전을 하니까요.
담배 냄새, 인삼껌 냄새는 어째서 마스크도 뚫는 걸까.
고모부가 비싼 스테이크를 사주셨다.
부랴부랴 전주 알라딘을 들러 산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드리고 호텔로 돌아왔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고 밤에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밤새 소화가 안 돼서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아침에 콩나물 국밥 먹고, 호텔로 돌아가던 길.
그 순간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는데 사진을 찍어 놓으니까 이런 식으로 살아 남는다.
이 때 나는 사실 커피 생각이 간절했다.
여행을 하면 태반 커피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어디에서 어디까지 가는 길이 멀었다거나,
그 길에서 큰 개를 봤다거나,
그러다 스텝이 꼬여 목적지를 변경했다거나 하는 것들.
비가 왔거나 해가 쨍했거나 바람이 불었거나 하는 것들과 함께 늘 커피 생각.
여튼 이번에도 확실히 깨달았다.
전주의 매력은 쇠락함에 있다. 전반적인 쇠락. 꾸준한 쇠락 말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켜켜이 쌓여서 쇠락의 풍채를 만든다. 쇠락의 잔근육.
이런 가게에 들어가서 아무 거나 시켜도 맛이 보장되는 작은 도시.
메뉴의 일관성 없음은 상관않고 아무 거나 시켜도 솔직히 다 된다. 다 맛있다.
전주에서는 김밥천국도 맛있다는 말을 쓰려고 보니
웬일로 김밥천국이 맛있냐는 뉘앙스로 들릴까봐 두렵네.
김밥천국은 원래 맛있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나 나름 빨간 양말로 멋냈네.
남색 스탠스미스에 빨간 양말 신는 걸 멋이라고 주장하기.
우리가 묵었던 곳은 전주 베스트웨스턴 플러스였는데
전반적으로 객실 청소 상태가 별로였다.
더러운 수준은 아니었지만 쾌적한 상태도 아니었다.
난 너무 커피를 마시고 싶었는데 (그게 어떤 커피여도 괜찮았는데)
왠지 컵의 위생상태를 믿을 수가 없어서 그저 누워서 커피 생각을 함.
상권이 다 죽었어.
전주가 얼마나 귀여운데 ...
귀여운 것 ... 죽지마.
이 자리에서 전주 베스트웨스턴플러스 건물이 보이네.
이 자리에 호텔이 생길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시기가 있었다.
내게 이 곳은 시청 부근이었고, 내부인일 때는 좀처럼 걸어서 둘러보지 않는 장소였는데.
시간은 생물 같다. 스스로 변화면서 다른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근데 이 날도 여전했구나,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다른 커피가게를 기웃대는 습관 ...
멀리서도 한 눈에 마스크 쓴 남자가 보였다.
중요한 전화를 받고 있는 중인 것 같았고.
손을 흔들어 보세요! 소리치고 싶었다.
마스크를 쓰게 되면서 나는 줄곧 소리 치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린다.
손을 흔들어 보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예기치 않게 한참을 기다려야 했던, 그러나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던 백일홍 방문.
이 여행에서 백일홍 찐빵이 차지한 포션은 50 정도 아니었을까. 1/2.
나머지 절반은 채선당 감자칩이다.
갑작스러운 종결.
특정 도시에 특별한 감정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자.
안녕. 또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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