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디션 나빴는데 기록은 좋았던, 1월 4일.
여름 이후로는 제대로 뛰지 않았는데 다시 뛰고 싶다.
2020년 1년과 2021년 상반기를 열심히 달리고,
2021년 하반기를 열심히 쉬면서 깨달았다.
나는 달리기를 좋아한다.
너는 사랑이라 부르지만
건포도가 잔뜩 들어 있지 - 이 대사를 너무 좋아했는데, 어디서 본 건지 잊었다.
하여간 악마의 젖꼭지를 멈추세요 ...
친구가 선물해준 엽서를 또 다른 친구에게 보냈는데,
그는 그걸 분실했다.
그렇게 구천을 떠도는 오억개의 엽서중 하나가 된
행운사랑인생... 이 배달사고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올해 초봄에는
노을과, BIG 형광펜을 좋아했다.
하기 싫은 일을 스스로 끝내지 못해 끌려가는 입장에서 하고 있었고,
누군가 내 목줄을 끊어주기만을 기다리는 심장이었는데.
그럼에도 꽃은 사방에서 만개했다. 야속하게.
그런데 어느 날 <온더무브>를 펼쳤더니, 벚꽃이 들어 있었다.
2019년과 2020년의 벚꽃이 2021년에 도착했던 그 순간,
달리다 잠깐 쉬는데 고양이가 내게 돌진했던 그 순간,
엄마가 미나리단을 펼치다가 소리를 질렀던 봄.
그 애벌레를 고이고이 들고 나가 집앞 풀숲에 놓아 주었던 순간,
러닝을 나갈 때마다 수상하게 쪼그리고 앉아 펜스 안쪽을 살펴보던 마음,
그런데 이 신칸센처럼 생긴 분이 산호랑나비가 될 몸이라고
친구가 가르쳐 주었던, 바로 그 순간,
무로 무엇을 하려고 했었나?
무를 사서 집에 가던 봄과
올해 첫 수박을 먹었던 여름과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을 느꼈던 그 날 그 순간.
아이폰12pro로 첫 사진을 찍었던 바로 그 순간 !
한차례 땀이 식는 걸 느끼며 무화과 나무의 무화과들을 구경했던 어느 오전의 기억과
그 기억에 포개져 오는 어린 시절의 기억들, 할머니 집에 있던 무화과 나무 이파리의 풋내와
평소보다 조금 늦게 달리러 나가는 바람에
예기치 않게 맞딱드린 노을의 비현실성에 대하여.jpg
다분히 의도적이었던 연쇄소비마 ... 아이맥을 영접한 날의 책상 풍경과,
내게 좋은 여름이란 그저 사랑하는 옥수수를 많이 먹는 여름일뿐이었던 여름의 책상 한켠과,
눈앞에 있는 크레파스로 동생의 자화상을 그렸던 날.
그리는 데 1분도 안 걸렸는데 그냥 너무 동생이어서
나는 매일 보는 걸 제일 잘 그린다는 걸. 다시금 알게 되었다.
엄마 따라 머리 볶으러 갔던 구월 중순,
엄마에게 오십만원짜리 안경을 사라고 종용한 날,
그리고 엄마에겐 올해의 (자신를 위한) 소비로 등극했을 그 날,
안경사분의 열정적인 활약과
삼손처럼 길었던 머리를 다 잘라낸 후라
머리 감고 밖에 나가면 어느 새 말라있는 초여름밤의 서늘함과
긴팔 후드에 쪼리를 신을 수 있는 초가을밤산책의 유연함을 딱 절반씩 닮은
환절기의 이파리들. 이것과 저것을 구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던
무화과잎과 감잎을 본 날,
탄수를 조절하면서 새로 알게 된 세계의 변칙적인 기쁨과
내 고양이를 프린트해서 만든 티셔츠에
엉망진창 하늘색 실로 새를 새겨본 날의 기분...
<고양이를 부탁해> 20년만의 재개봉 소식과
친구랑 따로 동시에 보러 갔던 날.
작은 상영관에 다섯명이 앉아 모임별의 비지엠을 듣던 순간
붉은색이 강하던 저녁의 어스름과 그림자와
옷가게 피팅룸에서 동생을 기다리던 순간,
구립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나와서 풍경도 빌렸던,
유려한 계단의 건축적인 아름다움이 무색할 정도로
내딛는 걸음마다 귀중했던 가을 날씨, 10월의 어느 날,
날씨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믿을 수 있었던 그 날,
아직은 햇빛이 여전히 너그러웠던 오후
동네에 숨어있던 커피집을 습격해 커피를 샀던 순간과 그럴 때 별 거 아닌데 들뜨는 마음과
어느 덧 12월 한기가 돌던 아침
우체국으로 향하는 동생의 모습이
이제 내 기억 속에서 한 씬에 담을 수 있을만큼
가깝게 붙어 있다,. 기억의 편집은 놀라워서.
그 어느 해보다 단백질을 섭취하려고 노력한 하반기였지만
또 너무 많이는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와중에
여전히 비건이 되지 못한 나를, 내 고양이들이 이해해줄지
생각해 보는 순간도 있었다.
비건이 된다는 게 혹은 되지 못한다는 게
어떤 존재에게 이해나 양해를 받아야 하는 일은 아니지만
사랑이 무구한 양해의 과정이 아니면?
그럼 사랑 대체 뭘까. 나는 모르겠다.
그리고 최최최최근의 순간들.
조금 쓸쓸했던 데스크를 조명으로 꾸미고 (thanks to 마테: 난 언제나 마테같은 사람이고 싶어,)
2021년 12월 31일, 오늘부로 나는 젓가락 교정 3일차가 되었다.
적어도 내년에는
오늘보다 젓가락질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겠지.
그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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