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나는 급습을 좋아했다.
잔디밭을 뛰어 다니다가 갑자기 풀숲의 바위를 들추어 보는 걸 좋아했다는 뜻이다.
가끔 그 아래에서 개미집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내가 제일 놀랐고 그후로는 개미들이 나 때문에 분주한 눈치였다.
개미가 지은 집은 징그러우면서도 미로 같았고, 건축적이면서도 생동감이 넘쳤다.
거기에는 너무 많은 개미가 있었기에 두려웠던 동시에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어떤 신비가 깃들어 있었다.
식탁에 오래 방치된 식빵. 식빵에 핀 곰팡이.
나는 곰팡이에도 늘 비슷한 느낌을 받곤 했다.
아무 생각없이 빵 봉지를 열다가 희끗하고 푸른 곰팡이를 발견하면
어쩐지 불길하게 느껴져 재빠르게 쓰레기통에 넣으면서도
막연하게 내가 불결해지지 않는다는 확신만 있다면
그걸 아주 오랫동안 들여다 보고 싶다고 생각하곤 했던 것이다.
불길한 것과 불결한 것. 그것들이 아직 느슨하게 분리되어 있던 시기에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내가 모르는 세계가 겹겹이 존재하고,
거기에서 무언가 발생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 그리고 증식하는 것.
그것이 내가 감각하는 곰팡이의 세계였다.
어느 날부턴가 나는 곰팡이가 꽃이라는 걸 직관적으로 알았다.
어른들이 그게 마치 꽃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게 '핀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추한 것과 아름다운 것.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
그 사이에 이 세상에 인증받지 못하는 아름다움이 있었고,
그건 곰팡이였다.
그런데 세상에, 재생 섬유로 만든 실로 곰팡이를 짜는 사람이 있었으니
내가 그를 좋아하지 않을 재간이 있을 리가.
이번에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사랑은 늘 오해로부터 태어난다는 걸.
오늘은 친환경 텍스타일 아티스트,
바네사 바하강Vanessa Barragão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내 첫 감상은 이랬다: 아니 흰 곰팡이잖아?!
그래서 좋았다.
내가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한 건 내가 실제로 저런 분홍색 곰팡이를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저런 분홍색 곰팡이는 정말로 저렇게 생겼기 때문이다. (왼쪽)어 ... 어째서 지금 내가 곰팡이의 전문가를 자처하게 된 건지는 차치하고, 조금만 더 시간을 주면 곧 악마의 얼굴이 되어 떠오를 것 같던 곰팡이도 본 적 있다. 독버섯처럼 생긴, 알록달록한 곰팡이 사이에 핀 검은 곰팡이. 그리고 사이 사이에 실처럼 털이 자란 것.그런 곰팡이는 정말로 저렇게 생겼기에 나는 또 감탄했다. (오른쪽)
세상에는 한눈에 아름다운 것을 재현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경멸과 박멸의 대상이 되는 곰팡이를 한올 한올 짜나가는 사람도 있다. 그의 곰팡이들은 심지어 우아한 느낌마저 든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그에 대해 포스팅을 할 생각에 들떠, 공식 홈페이지의 소개글을 읽었다.
"나는 포르투갈 베이스의 아티스트이고, 어렸을 때부터 바다 곁에서 살아왔고 바다를 사랑하고..." 라면서
자꾸 바다 이야길 하는 거다. 그 때부터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왔다.
그리고 그런 그가, 환경 오염의 주범인 버려진 직물들을 리사이클링해 만든 재생실을 엮어
자연의 텍스처, 모양, 그리고 구조를 모방하여 "바닷속 생태계"를 표현한다고 콕 찝어 말했을 때
잠깐 숨을 멈췄다.
그렇다. 그랬던 것이다.
그는 곰팡이를 짜는 아티스트가 아니었다.
그는 바다에 버려지는 섬유로 만든 재생실로
산호가 즐비한 바닷속 해양 생태계를 모방하고 있었던 것이다.
앞뒤가 잘 맞는 설명이지 않는가. 내적 동기에 납득이 가지 않는가.
그러나 그의 설명이 내게는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째서 내 눈에는 그의 작품들이 곰팡이로 보였던 것일까?
곰팡이를 재현하다니 무척 아름답고, 영리한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포자가 발아하듯이 일정한 조건하에서 쓰레기는 계속 나오는 지구.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인류란 곰팡이 같은 존재가 아니면 또 뭐란 말인가.속으로 이런 비약까지 하고 있었다.
그는 차분하게 말한다.
산업 쓰레기로 전락해 환경오염의 주범이 될 뻔한 실로도 충분히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나는 뒤늦게 바다를 구하는 방법으로 바다 짜기를 고안해낸 작가로 그를 다시 보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분홍 곰팡이가 이제야 분홍색 산호 군락으로 보일락 말락 한다.
그가 한올 한올 완성한 작품들은 아슬아슬하게 바다를 닮은
러그, 테피스트리, 그밖의 걸 수 있는 다양한 작품들로 재탄생 하고 있다.
바네사 바하강의 홈페이지에서,
더 많은 작품들을 볼 수 있다.
(홈피의 커서 모양이 포자 모양이라고 좋아한 사람=나)
인스타그램 @vanessabarragao_work
To. Vanessa.
eu sou sua fã
tenha cuidado para não ter tendinite !
당신의 작품을 거실에 깔 수 있게 돈을 많이 벌고 싶다
이건 포르투갈어로 어케 쓰냠...
'오늘의 소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뿐 벨리에 아이보리 리뷰: 150초중반 롱부츠 (0) | 2022.01.08 |
---|---|
모토라 세리나: 겨울의 얼굴 (0) | 2022.01.07 |
즐거운 겨울 아이템 모음: 바라클라바, 작은 크로스백, 니트 머플러 (0) | 2022.01.05 |
정신의 마라톤: 2022년 1월에 볼 영화 4개 (0) | 2022.01.04 |
신이어마켓 : '그러게 어쩌지' 스티커 나도 사고 싶은데 (0) | 2022.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