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색이었다. 뽀얗지가 않았고 표면이 거칠었다.
일주일에 한 번 선생님이 방문하던 학습지의 종이가 그랬다는 얘기다.
그런 시절이었다.
나는 미루고 미루다 무엇이든 목전에 해치우는 타입으로,
텍사스 전기톱 살인 사건의 살인마처럼
시간이 도끼를 들고 쫓아오는 스릴을 한껏 즐기는 어린이였다.
선생님이 다녀간 날부터 매일 조금씩,
그 날의 할당량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초인종 소리를 듣고 급하게 지우개질을 하다
종이에 구멍을 내거나 찢거나 했던 게 기억난다.
어쩌다 숙제를 끝내지 못한 날은
이불 속에 들어가 숨을 죽인 채 집에 없는 척을 했다.
그럴 때마다 동생이랑 보기 좋게 선생님을 속였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한 어느 날 그가 생각 나더라.
큼지막한 양복을 입고 우리집을 오가던
나이에 맞지 않게 수척하던 한 인간이.
스스로를 선생으로 칭하기를 쑥쓰러워 했던 그는 그게 다른 선생님들과 '달랐다'.
그래서 기억에 남았다.
자신을 무언가를 더 많이 아는 사람으로 위치 짓고 규정하는 일이 유난히 어색하던 사람.
그건 그저 내성적이기 때문만은 아니고
아마도 그가 그런 성정을 가진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나중에 생각했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겠다고 일기장에 쓰면서 대학원에 다닐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른다는 말이 안 나와서
매번 부적절한 저항감을 느끼던 시절에, 이상하게 그가 떠올랐다.
뻔뻔하지 못함. 벌거 벗은 채 있음. 그래도 괜찮음. 그런 끊어진 문장들이 떠오르더라,
그에 비해 나는 너무 뻔뻔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고. 불필요하게 많은,
치장인지 위장인지를 하면서 수업을 들었었고.
그러면서 그 때의 그는 나보다도 어렸었구나, 실감했고. 또 감탄했고.
인터폰을 누르면 노상 집에 있으면서도 없는 척 하면서
화면 속의 나를 허수아비 취급하던 개구쟁이 놈들을 가르쳐야 했을 때는
아 내가 벌을 받는 구나 했다. 누군가를 곤란하게 했던 일은 이렇게 내게 고스란히 돌아오는 구나.
매번 당하면서 화 한 번 내지 않았던, 이목구비가 떠오르지도 않는 그의,
흔적기관처럼 남아 있는 인격을 찬찬히 찬탄하며
마치 그게 눈앞에 있는 사람이기라도 한 것처럼
더듬더듬 그의 마음을 밀린 숙제처럼 깨달아 가던, 나머지 시간이 내게 주어지기도 했었다.
그래, 학습지 교사라는 건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것이냐. 대체 무슨 일을? 공부를?
과외를 하는 내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도 잠시, 그 때는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학습지와 과외와 그런 것들로 이어지던 생각의 고리는.
그런데 오묘하게도 삶은 순차적이지 않아서
과거는 언제든 현재로 끼어 들어와 미래에 혼선을 준다.
그러니까 다 지난 일이야. 라는 말은,
아주 가끔 우리 삶에 있어 괴력이 필요한 순간이나
낙담하고 술에 취해 바닥에 뻗은 사람을 벌떡 일으킬 때나 유효한 말이란 얘기다.
아무 것도 모르겠다고 데굴데굴 구르며 골골 대는 일이나
돌아서서 모든 것을 아는 척 하는 태도나 결국 그 뿌리는 같다. 오만이다.
그 날은 내가 오랫동안 아껴둔 어려운 책을 읽으면서 취해 있던 날이다.
알콜에 ... 지식뽕에 ...
어려운 글을 찬찬히 읽고 싶은 주말 오후였고,
맥주를 홀짝이며 자발적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그 고통이 내게 어떤 삶에 대한 통찰력과 깨달음을 줄 거라고 믿으며.
실은 맥주를 천천히 마시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찾았던 것 뿐이었으면서 말이다.
언제나 흥미로운 건 어려운 책은 알콜이 들어가면 더 잘 읽힌다는 사실뿐이다.
왜냐하면 이성의 문지기가 퇴근을 하니까.
'모른다'라고, '이해가 안 된다'라고 말하는 기능이 사라진다.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으면서, 나는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전능감에 취했고
그러다 무언가에 홀린 듯 자발적으로 철학 구몬을 구독하기 시작했다... 는 이야기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무엇이든 읽어 치우고 싶다.
그런 소박한 아이디어, 완벽한 오해에서 나의 전기가오리 밀림성공 인생이 시작 되었다.
어엿한 성인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떳떳하게 누구의 제재도 받지 않고
한도 없이 철학 구몬이 밀리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밀림의 왕...
그렇게 몇 년째 전기가오리의 구독을, 밀림을 이어가고 있다.
후원이라고 쓰고, 구독이라고 읽으며. 아주 너무나 쁘띠큐트한 금액이지만.
전기가오리는 철학 공부를 돕고 지원하고 책을 만드는 커뮤니티 같은 곳이다.
일정 금액을 후원하면 물질적인 혜택으로 할당된 여러 텍스트 꾸러미를 집으로 보내준다.
왜 그런 기사도 있지 않았나. 책을 읽지 않고 꽂아만 놔도 머리가 좋아진댔나? 지식이 쌓인댔나?
제목을 무의식중에 읽게 되어서 그런댔나? 암튼 그랬음.
그치만 나는 장서가가 되기에는 무엇보다 재력이 딸리고 ...
책을 그저 사두기만 하면 딱 책 높이만큼의 죄책감을 느끼는 편인데
전기가오리는 묘하단 말이지. 아무리 밀려도, 책장에 꽂아만 놔도 기분이 괜찮다. 왤까...
아마 난 이런 조구만 사치에 기쁨을 느끼는 일렉트릭 쇼크 별에서 태어난 것 아닐까.
전기가오리 책은 게다가 예쁘기 때문에 ... 나의 미감마저 충족한다.
난 종종 나 자신에게 얘기하곤 한다.
이 험악한 세상에 넌 지쳐 있는 조구만 종달새. 넌 항상 너무 지쳐 있지.
(아니 ... 진짜로 말을 한다는 건 아니고요.)
그러니까 종달새야, 너는 그저, 작은 소책자만 읽어도 충분해...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저걸 다 읽는 날도 오지 않겠냐고.
어린 시절, 밀린 학습지를 한 큐에 해결하던 시절의 괴력이
아직 너의 뼈와 피 속에 면면히 남아 있을 수도 있지 않냐고.
(아니니까 공부모임이나 신청하자.)
전기가오리
전기가오리는 서양 철학을 함께 공부하고, 관련 문헌을 번역 출판하며, 출판물에 대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학문 공동체입니다. 공부 모임이자 출판사이기도 합니다. ‘전기가오리’라는 이
philo-electro-ray.org
일력은 내 책상에서 포춘쿠키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약간 얼얼한 맛.
오늘 영화관에서 <나는 조선사람입니다> 보다가 나라 잃은 사람처럼 펑펑 울었다.
난 직접 나라를 잃은 적이 없는데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차별과 배제에 대해 감도가 높은 사람이 된 것은
전기가오리 지분이 좀 있다고 본다.
이쯤 되자
이 포스팅을 왜 하기 시작했는지 취지가 기억이 안 나는데
아마 일력 자랑하려고 시작한 포스팅인 것 같다.
자, 자랑 그만하고,
저 얇디 얇은 <여성과 빈곤층>부터 조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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