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트 아이디어들을 검색하다가 알게 된
이탈리아 디자이너이자 모델.
너무 아름다운 컬렉션을 선보인다.
꼼 데 가르송 아오야마 매장에도 입점해 있다는 다니엘라 그레지스 옷을
레이 카와쿠보 선생님이 왜 픽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연적인 소재, 니트들, 주름진 텍스쳐,
그의 옷들은 어떻게 보면 나긋나긋하고 한없이 유연한 소재들을 주로 사용하는데
옷을 가만히 보면 패턴들은 해체된 후 다시 재조합된 것처럼 보인다.
아주 새것 같기도 하고 아주 오래된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컨셉이 완성되는 순간은 은발의 디자이너 본인이 그걸 입고 나타날 때,
내 마음 속에서이다.
뒤집힌 모양의 물음표처럼 기분 좋게 전복되는 뭔가가 있다.
나홀로집에 비둘기 아줌마를 생각한다.
비둘기 아줌마의 옷은 그에게 곧 쉘터 아니었나?
니트가 전투복의 느낌을 주는 것이 간단한 작업이 아닐 것이다.
나는 옷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훌륭한 패션에는 발명과 혁명의 정신이 면면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언뜻 우스꽝스럽고 이상해보이는 바이브는
그런 정신의 입구이자 에센스인 것 같다.
다니엘라 그레지스 예찬.
뭐 거의 용비어천가네요.
"We might be tempted to think ‘old woman clothes.’ They are actually quietly avant garde, in the sense that they are experimental, and still pushing the boundaries of form, construction, and how people think of or wear clothes.
For makers, each collection provides a master class in how to incorporate handknits and crochets into a wardrobe: her hats, handbags, collars, mittens, muffs, scarves, Pullovers, necklaces, wraps and shawls are a shout out to makers everywhere." (해석: 우리는 "늙은 여자 옷"이라고 생각하고플 수도 있다. (구러나) 실제로 그것들은 조용히 전위적이고, 그런 의미에서 실험적이며 여전히 형태, 구성, 그리고 사람들의 사고방식 혹은 복식 방법에 경계를 확장하고 있다.)
어쩌면 아방가드르는, 일상의 혁명은,
아무도 쓰지 않는 이상한 모자를 쓰는 것부터 아닐까.
일부러 구겨진 옷을 입는 것 아닐까.
이런 나이에는 이런 옷을 입어야 한다는 개념을 아주 처음부터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구는 것 아닐까.
이 포스팅을 하면서 어쩐지 윤여정 선생님 생각이 난다. 나의 이탈리안 뮤즈가 다니엘 그레지스라면,나의 코리안 뮤즈는 윤여정일 것.
물론 나에게 백만원짜리 구김 티셔츠를 살 돈은 없으니 그 정신을 마음에 갖고 살겠다는 이야기다.
https://theknitpurldispatch.wordpress.com/2017/09/14/who-is-daniela-gregis/
원두가 담긴 봉투나 고양이 사료의 절취선처럼 마무리된 파란실.
저걸 당기고 싶었다 ... 제가 이걸 당겨도 될까요?
나는 저 파란실 한가닥에 사고를 당한 것이다.
덕통사고.
깅엄체크를 사용하는 방식이 꼼데가르송 느낌이 났다.
다른점은 보색을 더 폭넓게 사용하는 방식인 것 같다.
체크 상의에 패턴 새틴 트리밍이 된 복잡한 아라베스크풍의 치마를 입고
보라색 스커트에 노란색 더비를 신는다.
[나는 내쪼대로 산다. #병원가는 길]
같은 느낌이다.
야 너 목에 뭐 둘렀어.
야 그거 검정비닐봉다리 아니야? 라고 놀림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되는 그 지점에
나는 영원히 눕고 싶은 것이다.
형광 라임에 보라색 김엄체크를 갖다 대는 것은 사랑이다.
그리고 팔목에는 핫핑크 컬러의 실조각이 묶여 있다.
[#하나로마트 #식료품쇼핑]
나는 뜨개질을 사랑하지만 그에 비해 실력은 부족하다.
저런 목도리만 백개 정도 짜본 것 같다. 좀처럼 거기서 발전이 없다.
그래서 반가웠던 것 같다.
그런데 점차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
내가 뜨개질을 해서 선물했던 사람들은 여전히 그걸 가지고 있을까,
하물며 나는 내가 짠 것을 얼마나 홀대해왔나, 하는 것.
만약에 내게 디자이너 브랜드의 몇백만원짜리 클링클 자켓이 있다면
그 외투에 누군가 서툴게 짜서 선물한 울머플러를 두를 것인가?
나는 그런 사람일까?
나는 이 컬렉션을 보고 이 언발란스함이 사실은 담대함임을 알았다.
전반에 깃든 마음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남색, 노랑, 그리고 레드.
이렇게 통일성 있고 주목도가 높을 수 있나.
오른쪽 어깨는 체크, 왼쪽 어깨는 솔리드로 나뉘어진 것도 재밌다.
멀리서 보면 우리는 각자 납작한 타인에 불과하지만
그에게 가까이 다가설 때
그가 여러개의 모습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체계임을 비로소 이해한다.
컬러가 다른 신발을 한 쌍으로 신는 거 너무 좋아.
오렌지 컬러를 숨은 무기로 휘두른다는 느낌.
아름답다.
얼핏 부잣집 하녀같은 얼씨한 컬러로 수수해보이기만 하는데
팔목에 오렌지가 정체를 숨긴 히어로 같다.
비료 푸대 같은 걸 입고 있나 생각하겠지만
알고 보면 엄청나게 비싼 비료 푸대일 때,
넌 아마 놀랄 거야. 그런 느낌.
여름 소재와 겨울 소재의 믹스매치.
베이지로 잠잠해졌나 했더니 별안간 포에버21(R.I.P.)에 팔 것 같은
플라스틱 선글라스 같은 걸 매치한다. 종잡을 수 없다.
니트 가디건을 입은 보스 간지.
왼쪽, 레드를 매섭게 쓰는 법.
체크를 사랑하는 나는 가운데 착장을 사랑한다.
타탄체크는 어째서 이토록 그리운 느낌이 드는 걸까.
빨간 타탄체크에 보라색 머플러.
네이비 자켓에 블랙 주름진 텍스처의 스커트를 입고 라탄백을 들었다.
네이비 자켓이 라탄백의 손잡이 컬러인 레드를 받아줘서
겨우 어울리는 느낌인데.
이게 어떤 느낌이냐면 진짜 정반대라 잘 지내는 친구 같은 느낌.
보통 쇼에 나오는 옷들은 옷을 보여 주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옷들은 '옷이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해 묻는다.
'어떤 옷을 우리는 옷으로 보는가'에 이르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어떤 옷은 옷이며 어떤 옷은 넝마인가?
다니엘라 그레지스 옷은 어린 여성들이 입으면 느낌이 다르다
는 게 흥미롭다.
글쎄, 갑자기 평범해 보이네요.
헐. 방금 놀라운 걸 찾았다. 정말로 윤여정 배우님이 다니엘라 그레지스를 입으셨군요.
아 또 무언가 한 조각이 맞추어졌다.
깅엄체크는 그저 식탁보가 되기도 하고
이렇게 프레시한 착장을 위한 악센트가 되기도 한다.
사물에는 본질이 있다는 믿음을 - 고요하게 - 박살내는 것.
사물, 그리고 사람은 외려 포지션이 그것을 구성하고 변화시킨다.
그 유연함을 밀고 가보기. 그런데 그 여정이 아름답기까지 하다면
아마 어떤 디자이너들은 이렇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그럼, 아름답지 않을 때까지 가 보자.
하지만 결국 다니엘라 그레지스의 옷들은
어떤 식으로든 아름다워진다.
포섭되지 못한 아름다움이
아름다움의 외연을 확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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