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영드의 변별점은
영드의 주인공이 대체로 망가져 있다는 점이다.
드물지만 혹 주인공이 멀쩡하다면 보통 문제적 인물이 한켠에 박멸되지 않는 곰팡이처럼 살아있다.
그리고 끝내 나아지지 않는다.
말 그대로 Dead inside.
그리고 그걸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알고 있다.
당연히 그도 인간인지라
그는 나아지려고 나름의 노력을 한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주인공이 약간 나아진다
고 생각하는 계기를 맞닥뜨린다.
하지만 아니다. 그건 착각이었다.
이걸 두 번쯤 반복한다.
주인공은 매번 다시,
깊은 자기 환멸로 점철되는 삶을 살며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해댄다. 주변의 노여움, 비웃음, 동정심을 산다.
분명 이런 저런 일들을 겪으면 인간은 변화하기 마련인데
훨씬 나아지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은 것이다.
그리고 어느 덧 삼세판,
우리의 인물에게 남은 단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
이번에 그는 정말로 진심이다.
그는 개과천선의 의지를 불태운다.
그런데 만약 이 시도가 무난히 성공하면 아마 그건 영드가 아닐 것이다.
작가의 할아버지가 미국 사람이라거나 하여간 그럴 것이다.
영드는 막판 성공의 기쁨을 극대화하기 위해 주인공을 빡세게 굴리는,
꼰대 츤데레가 아니다. 영드는 그보다 인색한 고문관, 수전노에 가깝다.
결국 주인공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변화의 의지는 좌초된다.
왜냐? 이미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은 그렇게 나쁜 일만은 아니다라고,
그렇게 영드는 말해주는 것 같다. 영드는 늘 그렇다.
우리 한낱 인간에게 있어,
희망없음이야말로 진정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다시 티를 마신다 .
그렇게 망가진 채로,
죽은 내면을 소중히 간직한 채로.
그는 새털처럼 많은 날중의 하루를 살아간다 ....
영드란 이런 것이다.
대부분은 이렇다.
그러니 일드(너 용케 힘냈구나!)나 미드(어쨌든 해결. 디스이즈아메리카)를 보다가
갑자기 영드의 세계로 들어 보면 찬물 세수한 것처럼 정신이 번쩍 난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영드는 그런 눈앞에 별이 번쩍대는 맛으로 보는 것이다.
이번에 '플랙(Flack)'을 본 김에
그런 와사비 같은 알싸함을 잘 간직하고 있는
영드 네 개를 골라 보았다.
공교롭게도 모두 왓챠에서 볼 수 있더라.
[ 왓챠에서 볼 수 있는 영드 4개 추천 ]
01 플 랙 (시즌1,2 / 3시즌 확정 / 2019~ / Pop TV )
02 브로드처치 (시즌1,2,3 / 2013~2017 / ITV )
03 킬링 이브 (시즌1,2,3 / 시즌4 공개예정 / 2018~ / BBC America )
04 이어즈 & 이어즈 (시즌1 종료 / 2019 / HBO )
위에 소개한 네 드라마 모두 장르는 제각각이지만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1. 팔자를 스스로 꼬는 (혹은 과거에 꼰) 문제적 인물
2. 조금 망한 거 같더니 점점 더 망해가는 서사
3. 짧은 회차에 비해 길고 알싸한 전개
4. 주제는 희망 없음의 희망
4. 어처구니 없어서 웃다가 결국 울고 싶어짐
4. 일드/미드 보다 영드가 좋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용서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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