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비

히피 보헤미안 바이브: 인센스

조구만 호랑 2021. 12. 10. 23:45

0. 인센스란?

일단 인센스가 무엇인지 궁금한 분들이 인센스를 검색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인센스는 향이다. 피우는 향.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는 무언가가 생겼을 때,

추천하고 싶은 한 가지 요령이 있다.

영어인 것이 분명한 무언가를 잘 모르겠다 싶을 땐 

네이버 말고 구글에서 영문으로 검색한 후, 이미지를 먼저 훑어 보는 것이다. 

 

그럼 이런 이미지가 나오죠. 이것이 인센스입니다.

 

1. 인센스 첫 사용기 

 

인센스와의 첫 만남은 2012년 혹은 2013년.

당시 합정 메세나폴리스 무인양품에서 샀던 쪼고맣고 비싼 인센스 스틱을 기억한다. 

얇고 짧고 작은데 더럽게 비쌌던, 그래서 살까 말까 망설였던, 하지만 이사하던 날 기분 내려고 과감하게 샀던 기억.

 

요렇게 생겼다. 요즘에는 판매되지 않는가봄.

 

길이가 짧아서 연소시간이 짧지만, 질은 무척 좋았다.

 

아 또 메세나폴리스 얘길 해야 하는데,

당시 메세나폴리스 지하층에 있던 원더플레이스 한 켠에서 인센스를 팔았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요인보다 집에서 가까운 위치에 있다는 게 살다 보면 그 무엇보다 파워풀한 선택 기준이 되지 않나.

거기까지 걸어갈 수 있었고, 향을 상상하면서 한 두개 사서 집에 돌아온 후, 실제로 피워 보는 것.

그 모든 과정이 나를 인센스 세계로 이끌었다.

제일 좋았던 건 향에 따라 공간이 변화무쌍해지는 느낌이었다. 향테리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고. 

 

요가를 할 때, 명상을 할 때, 그리고 죽음 저 편으로 가까운 사람을 보낼 때 향을 피우는 것도 그런 의미가 아닌가 싶다.

향을 통해 공간 자체를 다른 차원으로 만들기. 그것이 타들어가고 있는 동안만큼의 시간을 내 것으로, 기억할만한 것으로 만들기.

하여간 그렇다. 차라리 담배 냄새를 지우려고 피우기 시작했다고 말하면 될 것을.

원수의 시체를 묻고 돌아와 피 냄새를 지우려고 피우기 시작했다고 말하면 될 것을.

정말 말이 많죠.

 

암튼 처음에는 HEM사에서 나온 인센스들을 많이 피웠다.

차츰 친구들에게 페이퍼 인센스, 팔로산토 우드 스틱 등도 선물 받았다.

 

다양한 인센스들.
페이퍼 인센스를 태우면 이렇게 된다.
좋은 냄새가 순식간에 공기를 채움. 생활인에게는 이런 게 필요한 순간이 있어.

 

왼쪽 인센스. 정말 좋은데 구할 수 없다.

 

아마 왼쪽 저 인센스를 태워 보고 큰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너무 좋아서. 

친구 어머니가 인도에 다녀오시면서 사오신 걸 친구가 선물해준 것인데 

인센스가 이렇게 풍부한 향이 나는 거였구나, 처음으로 깨달은 향이었다. 

그런데 구할 수가 없으니 정말 아껴서 쓰고 있다. 

 

이런저런 모험을 해 본 결과, 

나는 저렴하고 러프하고 야생적인 느낌의 인센스를 좋아한다.

이게 내 취향의 핵심인 것 같은데, 나는 엄청나게 좋은 것에는 별 취미가 없다.

난 적당히 좋은 것, 충분히 좋은 것의 100% 만끽을 원한다.

그리고 이국적인 것을 무턱대고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였는지? 정갈한 느낌의 인센스들은 만남의 목적이 분명한 고급 한정식집을 가는 느낌으로만 좋아했다.

그러니까 나에게 정갈함을 목표로 두고 싶은 곳은 향이라는 카테고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oth, 에서 나온 선향은 아름다운 박스에 훌륭한 컨셉을 가지고 있지만 별 감흥이 없었다.

다만 박스 안에 아마도 책갈피로 쓸 수 있는 종이가 한 장 들어있는데, 이 종이에 벤 향은 무척 좋았다.

아마도 이런 게 선물하기 좋은 아이템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2. 인센스의 종류 

인센스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선향과 죽향. 

선향은 우리가 한 번쯤 제사상에서, 절에서 봐 왔던 그것이다.

향 반죽을 그대로 굳힌 것으로 은은하게 발향된다. 주로 일본에서 많이 생산한다. 아직까지 나는 선향을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향을 피웠을 때, 이거다 싶은 향이 아직 없었다. 아니 그보다 이 향과 저 향의 차이를 잘 구분하지 못하겠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죽향은 주로 인도산인고, 향 반죽을 대나무 꼬치에 묻혀서 굳힌 것이다. 그래서 인센스를 만지면 가루가 떨어지는 일이 왕왕 있다.

죽향은 발향이 센 편인데, 그래서 빈티지샵에서 많이들 피워 두는 게 아닌가 싶다. 강력한 구제 냄새를 지우려면 더 강한 향이 필요하니까.

내가 처음 향을 접한 곳도 빈티지 가게였다. 

 

3. 지금까지 써 본 것들 

처음에는 오프라인에서 샀지만,

나중에는 쇼핑몰 아래 두 곳을 주로 이용했다. 

헤븐센스: https://heavensense.co.kr

피오센트: https://smartstore.naver.com/funboxx

HEM사의 더 문. 한여름에 도닦는 느낌으로 자주 피웠다.
HEM사의 레인포레스트. 걍 그래.
이거 좋다. 이거 좋아요. 프래그런스. 인도향 극혐이다 이런 사람에게 애초에 인센스는 추천할 게 못 되지만 그나마 이건 좀 덜하다고 할 수 있음.

 

찬단 > 더문 > 프래그런스 > 어트랙스 머니 > 나그참파 > 레인포레스트 순으로 좋아한다.

 

 

왼쪽부터 간단하게 리뷰를 하자면 

나그참파: 이효리 선생님이 쓰셔서 유명한 나그참파. 왜 그랬는지 둡스틱으로 샀었고 내 취향은 아니었다.

더 문: 일본 편집샵에서 많이 사용한다는데 부드러운 느낌이 난다. 근데 100피스 태워보고 다시 사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던. 

어트랙스 머니: 지금 잘 기억이 안 난다. 하하. 근데 의외로 좋구나 했던 기억은 있다.

레인 포레스트: 이름에 속지 말아야 할 인센스 순위 3위 안에 들 것 같다. 기대 때문에 유독 파우더리하고 매캐하게 느껴졌다.

프래그런스: 화이트머스크, 머스크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것 같다. 근데 이것도 약간 파우더리한 느낌이 있다. 

이게 둡스틱. 불이 자꾸 꺼지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타다 만다. 불을 격하게 붙여놓으면 또 금방 다 타버린다. 적당히를 몰라...
DARSHAN 다르샨에서 나오는 인센스들. 이 중에 팔로산토만 좋아한다.

DARSHAN 인센스들은 좀 더 내추럴한 컨셉의 향들이 많다. 천연 오일을 사용했다고 들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밝고 플로럴한 계열을 주로 사보았던 것 같다. 뭐 인생에 화사함이 부족했던 시기였겠지. 

근데 취향이 아니어서 아직도 남아있다. 팔로산토를 추천한다.  

우디한 향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어느 회사에서 나온 것이든 팔로산토를 추천하고 싶다. 강력 추천.

신기한 건 저 위쪽 사진에 나왔던 우드 스틱을 태울 때 나는 냄새를 인센스로 구현했다는 게 ... 난 그게 놀라워. 

 

오른쪽에서 두 번째 제일 커다란 거, 그거 제일 좋아해요. SATYA사의 수퍼히트.
수퍼히트. 1964년부터라니. 놀라운 인도 인센스의 세계.

내가 제일 좋아했던 인센스는 아마 사티아에서 나온 수퍼히트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그참파가 제일 유명하다고 무턱대고 그거 대용량 사지 마시고 이것도 사보세요. 수퍼히트 쪽이 조금 더 달고 덜 파우더리하다. 

사티아에서 나온 인센스들. 요즘 올리브영에서 팔더라고요. 개당 4900원이라는, 다소 펌핑된 가격에. 

드래곤 블러드: 달고 시원한 향. 이거 되게 여러 번 샀다. 

카르마: 나의 최애 인센스 탑3위 안에 드는 향. 뭐라고 설명을 못하겠는데, 업보의 향이 이런 걸까.

레몬그라스, 시트로넬라: 모기 쫓으려고 샀는데 의외로 상큼한 느낌이라 좋았다.

 

사티아에서 나온 향들이 HEM보다 정제된 느낌이 있고 깔끔하다.  

근데 싼마이 느낌의 매력도 무시할 수 없는 거라 뭐가 더 좋다고는 못하겠다. 

HEM에서 만든 인센스 케이스의 키치함. 그걸 빨간 동그라미가 허덕이며 잡아줌.

근데 요즘 자꾸 심플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 같아서 아쉬움. 아래 코코넛 인센스처럼 케이스가 바뀌기 시작했다. 

 

tip 인센스 실패하지 않는 법: 모든 인센스 회사에서 공통적으로 내는 향을 사면 적어도 중간은 간다. 드래곤 블러드, 팔로산토가 그런 경우.

 

다르샨의 달달한 인센스들 모음. 겨울에 잘 어울릴 향들이다.

코코넛: 달고 달다. 단 거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

바닐라 코코넛: 단 거에 바닐라를 또 끼얹었다. 코코넛과 미묘하게 다른데 향을 피우면 크게 차이를 못 느낀다.

바닐라: 바닐라.

프룻 펀치: 통조림 프룻칵테일처럼 의외로 좋다고 느꼈다. 굳이? 라고 생각하지만 있으면 또 그럭저럭 먹는 그런 향.

시나몬:  시나몬이구나 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냥 향을 피웠구나-의 느낌.   

 

4. 정리 

끝으로 제일 좋은 거 세 개 추천하고 끝마쳐야지.  

수퍼히트, 카르마, 그리고 찬단을 태워 보세요. 

아, 팔로산토도 좋은데 어카지.

우드스틱도 사서 태워 보세요. 

 

몇 년전 같은 층에 살던 모로코 요르단 커플이 내내 피워대던 향이 아직도 궁금하다. 

인사 한 번 나눈 적이 없는데 실은 가까운 곳에서 향을 피우는 사람들이 있어서 

조금 마음이 든든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