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비

2022년 이규태 드로잉 캘린더: 내가 처음으로 산 달력

조구만 호랑 2021. 12. 18. 09:30

관공서에서 배포하는 달력도 좋아한다. 은행 달력, 농협 달력, 무슨 무슨 상사 달력도 좋아한다. 달력의 기능에 충실한 달력은 그것만의 멋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수중에 들어오는 달력이 생기면 그걸 받아 썼다. 

 

그러다 작년 이맘때 엄유정 드로잉 달력을 선물 받았다. 덕분에 일년을, 열두달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던 것 같다. 매달 다른 드로잉이 - 것도 율동성이 강한 드로잉이 - 벽에 붙어 있으니까 활력이 생기더라. 달력이, 붙어 있는 형태가 아니라 12장의 낱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니까 매달 마지막 날에는 그 다음달 분을 꺼내서 교체해야 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달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는 걸 알았다.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러다 잠깐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 정말로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지만 그동안 나는, 어쩌면 세월이 가는 게 내내 속이 상했던 건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맘에 드는 달력 하나 사는 걸 못하고 피하고 주저했던 건지도 모른다고. 그런 생각을 했다. 세상에는 매일이 너무 소중해서, 완벽한 하루를 너무 희망해서, 하루종일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주저 앉는 사람도 있다. 실망을 하고 싶지 않아서 실망이라는 큰 버블 속에 스스로 갇히는 사람. 나는 이제 그런 사람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올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달력을 샀다.     

 

 

https://your-mind.com/product/2022-이규태-그림-달력/4359/category/336/display/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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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9월 그림에 홀려서 샀다.

 

아름다운 그림.

난 달력을 사는 척 그림을 산 건지도 모르겠다. 

한달간 한 그림을 보(게 되)는 일이 흔한가? 난 아니었다.   

 

예약판매 증정품 사이즈 ... 너무 작은 건 왜 가슴이 아플까요?

 

그리고, 오늘.

드디어 캘린더가 왔다. 

 

페이지 넘김이 좀 뻑뻑하지만 차근차근 넘기니까 잘 넘어간다.

 

작아. 소중해. 

한 손에 들어오는 일년. 

예상은 했지만 정말로 작아서 이 쁘띠함에 기절해서 내년까지 깨어나고 싶지 않지만 ...

 

작은 새와 더 작은 새. 그럼 더 더 작은 새도 어딘가에는.

 

이걸 보고 나니까 

한동안 기대한 적 없었던 새해를

맨 정신으로 

조금 기쁜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을 것 같다. 

 

 

구월의 그림.

뒤에서 걸어 가는 사람의 기분을 알 것 같아서 좋았다.  

앞서 가는 사람의 뒤를 보며 걸어가는 사람의 마음. 그런 게 구월의 마음일까. 

 

오늘부터 미리 여기에 두기로 했다.

 

2021년에 사용했던 엄유정 달력. 마지막 장은 사람이 사람 곁에 있구나. 그렇게 모여서. 방역수칙 위반인데 좋아보여. 

 

고마웠다, 2021년 엄유정 달력.

달력은 언제나 남은 날들이 아직 있다고 펼쳐서 보여준다.    

그러니까 끝까지 침착하게 살아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