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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23일 대구마라톤 풀코스 후기: 3년 연속 참여

조구만 호랑 2025. 2. 24. 08:39

2023년 하프  

2024년 풀코스 

2025년 풀코스 

3년 연속 참여한 대구마라톤은

떠 죽이려고 했는데 '어? 안 죽네?' 하다가 

'오호..ㅎ 그렇담 얼어 죽여주지 ...' 하는 것 같았다. 

 

진짜 진짜 추웠다고요

 

 

반팔, 반바지, 싱글렛, 쇼츠 입으신 러너분들

진짜 새삼 리스펙트...했다. 

나는 긴 팔 나이키 엘리먼트 하프집업에 검정 긴 레깅스 입고

그 위에 나이키 러닝용 방수 바람막이 입고 구멍 난 니트장갑을 꼈다. 

C2 엘리트 양말에 아디다스 아디오스 프로3 신고 갔는데

최근 야외에서 뛸 때마다 발이 넘 시렸던 게 떠올라서 

러닝화 앞코 부분을 의료용 테이프로 테이핑 하고 갔다.

근데 그래도 발이 시렸다. 

 

아마 내가 42.195KM를 꾸준히 빠르게 같은 속도로 뛰지 못하는 하수이기에 

중간 중간에 정말로 춥다고 느껴지던 것이겠지만 

작년과는 달리 대구 스타디움 안쪽을 개방해주지 않아서 

마라톤 출발시간까지 1시간 이상을 야외에서 대기해야 했던 건 너무... 뭐랄까

신종 고문 같았다. 사회자가 뭐라 하는지 하나도 안 들렸다. 추워서...  

본의아니게 사방을 뛰어 다녔다. (이걸 워밍업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봤자 영하 3~5도라 그 정도 뛰는 걸로는 택도 없더라. 

잠깐만 멈춰도 몸이 뻣뻣하게 굳더라.

 

그러다 얼떨결에 출발했고

QCY T13 이어폰이 귓구멍을 아주 꽉 막아주는 바람에 

주호영 의원 인사하고 홍준표 시장 등장해서 얘기하는 건 하나도 안  들었다.

(아 옆 러너분들의 야유 매우 잘 들림)

추워 죽겠는데 그런 개회사 같은 걸 꼭 해야 하나? 싶은 마음뿐.

이봉주 쌤 등장하셔서 인사할 때 터지던 환호는 넘 좋았다.

모든 등장에는 그에 합당한 명분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여기저기 먼 곳에서 온, 추운날 달리기로 결심한 러너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는 존재에게 개회사를 맡기라. 생각이 있으면.

 

암튼~ 나의 이번 풀코스 목표는 3시간 59분이었어서 

원대했던 나의 이번 풀코스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1~8K: 5:20

8K~37K: 5:15 

37K~끝: 6:30 

초반에 의도적으로 오버페이스를 하고 

어차피 지칠 게 뻔한 후반부는 앞으로 나아간다는 감각만을 가지고 달리자는 전략. 캬...

그렇죠^^누구에게나 계획은 있자나요. 쳐맞기 전까지는... 

 

초반부는 일부러 애플워치를 안 보고 달렸다.

보면 그 때부터 남은 거리를 계속 생각하게 될 거라서. 

(이 대목에서 '계획'이라는 게 P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죠....)

근데 작년에 달려 본 기억은 희미하게 남아 있어서

주변을 둘러 보면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은 게 확실한데

그만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거다.ㅋㅋㅋㅋㅋ 계속 이 속도로 뛸 자신이 없는 거다.

'아 대체 얼만큼 뛴 건가?' 싶어서 시계를 봤더니,

어느 새 20K가 훌쩍 지나 있었다. 

그렇담 전반부에 오버페이스 하자는 계획은 대충 성공한 셈 아닌가? 정도로만 생각하고  

속도를 슬쩍 늦췄는데 뒤에서 3시간 30분 풍선을 매단 페이서가 나타나셨다...

그 때 처음으로 내가 3시간 30분 페이서 앞쪽에서 달리고 있었음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 풍선 옆에서 얼마간 발악을 해보았지만

그 풍선이 나를 스치고 앞으로 쭉쭉 나가는 모습... 아련했다. 

우리... 점점 멀어지나 봐...

 

그리고 그 때부터 후반부는 어땠나.

계속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의 싸움이었다. 

정확히 32K 지점에서 허벅지 근육이 심상치 않는 느낌으로 올라와 걷기도 했고

(동생한테 전화해서 '야 망했다'고 고함)

의료 봉사하시는 분이 보일 때마다 파스 뿌려 달라고 요청했다.

추운데 나와주신 그분들께 너무 감사했다. 그 힘으로 끝까지 어떻게든 뛸 수 있었던 것 같다.  

고모역 톨게이트 직전 오르막에서는 거북이의 속도로 뛰는데

'아 내가 미쳤나 왜 왜 왜 또 이 고생을 사서 하지?'라는 생각이 척수반사적으로 들었으나 

이 생각은 작년에도 똑같이 이 장소에서 했었다는 게 기억났다.

다만 그 때는 걸었고, 올해는 어떻게든 뛰었다.

올해 세부 목표 중의 하나가 이 구간을 걷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여기서 이미 목표를 이룬 셈이다.  

 

같은 코스를 다시 뛰니까 예상할 수 있는 절망의 오르막 구간들 때문에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작년보다 심적으로 좀 힘들긴 힘들었다,

깨지 않는 악몽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라. 

그러나 왼발 다음 오른발, 그리고 다시 왼발 다음 오른발

그렇게 갈 수 밖에 없는 순간들을 계속 만들어 가야함을,

그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음을 알고 있으니까. 

어떻게든 나는 완주를 하긴 할 건데, 그건 변치 않는 사실인데,

그렇담 최대한의 효율로 가는 게 맞지 않나 하는 결론.

정신과 신체가 합의를 본다. 

아예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면 

걷는 것보다는 뛰는 시늉이라도 하는 게 덜 힘들고 더 빠르니까. 그걸 택했다. 

 

하지만 힘들 때는 자꾸 고개를 쳐들게 된다. 남은 거리를 계산하게 된다. 

그러나 저 멀리 개미떼처럼 오르막을 오르는 사람들에 주의를 빼앗기는 게 아니라 

그저 내 발 밑 30CM 앞만을 보며 어떻게든 나름의 최선을 다하는 순간이 필요하다는 것.

마라톤은 그걸 매번 내게 알려준다. 

지금이 그 순간이야... 생각했다.

물론 마지막 2.2K 구간에서는 속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쌍욕을 했다.

(네... 그 마지막 오르막이 대구마라톤 시그니처라고 하더라구요...시그니처좋아하시네)

 

스타디움 안을 달려서 결승점을 향할 때는 늘 같은 생각을 한다.

환호하는 사람들의 얼굴과 함성이 어째서 나에게까지 닿는가, 하는.

아무런 이해관계없이 누군가를 응원하는 마음이란 값진 것이구나, 하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결승점을 통과하는 순간에는  

오히려 작년보다 담담했다. 

물론, 담담했다고 기쁨이 적었던 것은 아니지만. 

 

단 한 명도 아는 사람이 없는 주로에서 마주쳤던  

각자의 속도로 자기 만의 레이스를 끝까지 해낸 모든 러너분들

응원과 감사를 전하고 싶었다. 극내향이라 화이팅 한 번 못했지만... 맘은 그랬다고요.

정말 개같이 힘든 구간에서는 함께 달리는 분들이 있어서 힘이 됐다. 혼자서는 못했다. 

 

 

아 맞다. 

마지막으로 이번 대구마라톤 짜증 났던 점 3가지를 쓰고 싶다. 

1. 티셔츠 구린 건 차치하고(갈수록 열화됨), 안내책자 왜 안 주나요. 

2. 급수대 물과 게토레이 비율... 게토레이가 줄어듦. 게토레이 레몬맛 맛있는데 많이 놔 주세요...

3. 출발 전 실내 개방 왜 안 해요. 출발 전에 실내에서 스트레칭도 하고 몸 좀 풀게 해주세요...

4. 마지막에 배부해 준 동그란 빵. 풀 뛰신 분이 차디찬 잔디밭에서 찬물이랑 드시는 거 봤는데 맘이 그랬다. 

작년처럼 차라리 카스테라가 나았을 거 같고, 뜨거운 차라도 배부해주시라고요... 뜨거운 물 한잔이라도... 

 

어 쓰다보니 끝이 없네요.

이만~!  

어제 대구마라톤 달리신 모든 러너분들

너무너무 수고하셨습니다.

 

 

 

대구마라톤 3년의 기록 - 조금 뿌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