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비

3월에 본 영화: <고양이들의 아파트>

조구만 호랑 2022. 3. 21. 05:05

고양이들의 아파트  (88분, 2020년) 

 

<고양이를 부탁해>, <말하는 건축가>를 좋아한다. 

이 다큐는 바로 그 정재은 감독의 다큐멘터리인데다,

고양이가 무더기로 나온다는 소문을 들으니 도저히 안 볼 수 없었다.

무조건 크게 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방역패스가 해제된 이래, 실내 공공장소 출입을 스스로 금하고 있는데도

굳이 극장으로 갔다.  

 

내가 자주 가는 작은 극장에는 고양이가 한 마리 살고 있는데

그 분이 오늘은(3/20)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내가 티켓 사는 걸 구경하며

데스크에 앉아 계시는 것 아닌가. (직원분에게) 몇 살이냐고 여쭤봤다.

다섯살이라는 요긴한 정보를 얻었다. 

 

 

오우삼 (5세<- NEW ! )

 

 

워낙 작은 예술영화 극장이고, 좌석수가 단촐한 상영관이긴 해도 

코로나 이후로 늘 텅 빈 채로 많아야 다섯명이서 보곤 했는데 

오늘처럼(3/20) 많은 관객이 관람하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조금 놀랐다.

그리고 상영이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한숨이 터져 나오는 게 웃겨서 ...

이건 아는 사람만 아는 건데,

약간 귀여움이 역치에 도달하려고 할 때 한숨 나는 거 아시죠 ...

한숨이 방울방울 터지는 거 알죠. 

 

홈마 아이돌 직캠 보는 기분이 이런 걸까 싶었달까. 

조금만 기다리면 집에서도 볼 수 있게 된다는 거는 알지만 

큰 스크린으로 보면 우리천재냥이들이 우주에서 더 많은 픽셀을 차지하는 거니까요...?

 

늘상 황제 폐하 포스로 집 안에 들어 앉아

사랑의 오오라로 나를 조정하는 인도어 고양이들만 모시며 살다가 

도시 생태계에서 씩씩하게 살아가는 고양이들을 보니

참 늠름하고 튼튼하고 멋있더라. 

실내묘에게는 없는데 실외묘들에게는 있는 그거 ... 

다큐를 보는 내내 그게 뭐지 ... 그게 뭐지 ... 한참 생각했다. 

태생적으로는 없는데 생존에 특화되어 길러진 사회성이랄까.

(아직도 꼭 들어맞는, 적절한 말을 찾지 못했다.) 

뚱이의 의기양양함도 예냥이의 '(산)독기'도 각자 다르지만 

어떤 유연한 사회성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것 같았다. 

반면 나는 여전히 울집 1번 고양이에게 할큄을 당할 때가 있는데

그 때마다 얘가 아직도 열어주지 않은 마음의 문이 있다고 생각하고  

어쩐지 다행스럽다. 함께 10년을 넘게 살았는데 여전히 넌 너야.  

길고양이의 사회성 있음과 집고양이의 여전한 공격성이

내게는 같은 맥락의 지표가 되는 것 같다.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화단에 죽어 있는 고양이를 치워 달라고 신고하자,

구청 청소과에서 나와 쓰레받기로 쓸어 담아 종량제 봉투에 넣는 장면.

경쾌한 템포로 스치듯 잠깐 나왔고

앞뒤 맥락에서 어딘가 조금 동 떨어지는 느낌의 씬이었지만

그걸 이렇게라도 남겨놓은 마음을, 직관적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또 하나.

단지내 모든 고양이들의 얼굴을 구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

아는 고양이는 결국 구별하고야 만다는 게 진짜 신기하죠.

그런 게 사랑인가보다. 

  

도시의 고양이는 

때때로 극진한 보호를 받는 위치에 있기도 하고,

극악무도한 학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마지막에는 타는 쓰레기로 배출된다.

도시의 고양이는 행복했을까.

이 다큐는 이 질문을 현재형으로 바꾸어 다시 되묻는 작업을 한다.

고양이는 행복할까.

인간의 보호 아래에서 충분한 먹이와 안전을 획득하면

그걸 우리 멋대로 행복이라 말해도 좋을까.

그런 질문을 스스로 던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바깥은 너무 위험하니 우리집으로 가자고 

혹은 저 모퉁이에 머리짱큰 깡패냥 때문에 도저히 이 꼴로는 밖에선 못 살겠으니 우리집에 오겠다고 

고양이로부터 간택을 받거나

구조라는 이름의 납치를 강행하여 고양이와 가족이 되었지만

나도 늘 되묻는다. 그래서 고양이들은 지금 행복할까. 

때로 혹독하고 궂은 날씨가 계속되지만

어떤 균형에 도달한 도시X자연X생태계는 그 자체로 대단히 유연하고 훌륭할 수 있구나.

몰랐던 걸 알게 되었다. 아파트 단지에서 다복하게 살아온 고양이들의 모습.

인간이 건물벽에 오함마를 대기 전까지 말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둔촌동 주공 아파트가 재건축에 들어가게 되면서

그 대단지를 제 영역으로 삼고 살아온 추정 250마리의 고양이들을

건물이 붕괴되기 전에 바깥으로 이주시키려는 사람들의 노력과 그 여정을 담담하게 담고 있다.

재건축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구조하지 않았으리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공감했다. 

다큐를 보며 두 개의 질문을 했다. 

첫째, '이 땅의 주인은 누구인가',  

둘째, '이 땅에 태어난 고양이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 대답은 생각보다 간단치가 않다.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극장에 다시 불이 켜지는 순간,

맞서는 대답 말고 나란히 서는 대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 그리고 러닝타임 마지막 4분 볼 때

뭐 좀 귀여우면 '아파트 뿌셔' '전봇대 뽑아' 이런 말 했던 과거를 반성했다.

뭔가를 뿌시는 건 생각보다 흉폭하고 돌이킬 수 없는 거더라.

 

정재은 감독님 아이클라우드에는 9시간 분량의 영상이 있다는 기사를 읽은 것 같은데

그걸 보고 싶다는 게 내 최종 감상평이다.

 

어떤 존재든 곁에서 함께 살아가기로 마음 먹는 건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영화에서는 '개입'이라고 표현했지만 길들인 것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겠다. 

쉽지 않다는 걸 알면서 하는 사람들은 반쯤 미친 사람이고

나는 늘 그런 사람들을 좋아한다. 

작년은 내게 어떤 분기점이 되었다.

그 전까지는 스스로 마음이 약한 사람이라고 여겼다면

이제는 그러하기에 비겁해지지 않도록 최선의 주의를 기울여야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다짐과 공명하는 영화였다.  

 

영화 다 보고 나오니까 A3 포스터 주셔서 고이 들고 왔다
요 버전들도 예쁘다

 

3단지의 최고 스타, 뚱이. 우리집 2번 닮았다&nbsp;
예냥이. 우리집 3번 닮았다. 동물이 사람에게 길들여지는 과정을 보는 게 나는 늘 슬프다.&nbsp;
둔촌 주공 대단지. 위세가 대단하고 쇠락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었다. 어쩐지 으스스하기도 하고.  

 

+ 전국 독립 예술 영화 상영관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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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독립 X 예술 영화관 리스트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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