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번째 고양이(올해로 17세가 되었다)가 시한부 판정을 받으면서
모든 생활이 고양이 기준으로 개편되었다. 고양이와 함께 살기 전 나의 생활이 지금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 전생처럼 느껴지듯겨우 3개월 전 내가 아무렇지 않게 구가하던 안락의 테두리 안에 있던 것들은곧 닥쳐올 일을 모르고 무지 속에서 허허실실 대던 뼈 아픈 과거로 감지될 뿐,구체적인 어떤 생활상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다 잊었다. 백 일 전에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 하나도 모르겠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을 잘 방어하자는 결의를 다지며 숨가쁘게 75일쯤을 지나고 보니 처음 병원에서 일주일이 고비라는 얘길 들었던 것,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쯤이 되었을 때 불안이 최고조에 달해 매일 울고 다녔던 것, 그렇게 매일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기분으로 산다는 건 살아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 시간이었다. 난 내가 그렇게 미래지향적인 인간인지 전에는 몰랐다. 최근에는 어떻냐면, 조금도 미래에 가 있지 않고 온전히 현재에 집중한다는 게 어떤 걸 말하는 건지 어렴풋이 감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건 아주 조금만을 갖고 만족하는 연습이다. 사람들이 쉽게 최선 최선 말하지만 최선이라는 건 있는 힘껏 오장육부의 에너지를 짜내려는 사람의 발광같은 것이 아니고 다른 수가 없을 때, 그저 그럴 수밖에 없을 때 일종의 체념 속에서 하는 수행 같은 거라는 걸나는 최근에야 알았다.
암튼 사설이 길었다. 그리고 내 고양이는 아직 살아있다. 그러면서 이것저것 산 게 많았다는 얘기다. 나의 말 없는 친구, 나의 첫째 고양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해보자 싶어 몇 가지 환경을 조성해주면 어떨까 싶었고 그래서 텐트를 구입했다는 얘기다.
일종의 거대 숨숨집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있는 숨숨집은 쓰지도 않을 뿐더러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는 방구석 먼지 구덩이로 들어가 있기 일쑤라서새로운 숨숨집을 사는 건 별 의미가 없다 싶었다. 또, 이제 눈이 뿌옇게 먼 첫째가 밤이 되면 내 곁에서 자려고 침대 위에 올라오는데 베란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아주 작은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서 제대로 자질 못하는 것 같아 어엿한 지붕과 벽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안전하다 느낄 수 있는 그러면서 동시에 이리저리 잘 드나들 수 있는 형태의 집을.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텐트가 떠올랐다.
내가 원하는 난방텐트의 조건은 4가지였다.1. 고양이가 긁어도 긁히지 않는 탄탄한 소재며 2. 세탁세척이 수월할 것.3. 지붕이 사각으로 넓고 높이가 낮지 않아 개방감이 있을 것. (돔 형태는 그래서 제외시켰다.) 4. 4면이 지퍼로 열리는 구조일 것. 고양이가 드나들기 좋아야 하고 환기의 필요성도 있었다.
그래서 검색을 통해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텐트가 로티캠프 프리미엄 사각 텐트라는 걸 알게 됐다. 로티 프리미엄 사각 텐트의 소재는 패브릭이고울코스 세탁이 가능하며 높이가 145cm며 사각 지붕이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날 결제했고, 27일 오후에 받았다.
뭔가 거대한 박스가 올 거라는 막연한 상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배송되어 온 박스는 단촐했고 내용물도 심플해서 알아보기 쉬웠다.다만 좁은 방을 고려하지 않고 흥분해서 설치를 시작해버리는 바람에 혼자 거대한 두 개의 포대를 들고 낑낑대기는 했다. 아마 성인 두 사람이 함께 설치한다면 5분 이내로 설치가 가능하리라 예상한다. 폴대를 먼저 엑스자 형태로 만들어 두고 이음새 부분을 끼웠다면 수월했을 텐데나는 이음새 부분을 연결한 후에 엑스자 만들려고 쌩쑈를 함.
암튼 그렇게 텐트를 설치하고 하룻밤 자고 일어났는데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 같았다는 얘기. 정말로 후회했다. 왜 진작 텐트 살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고양이랑 둘이 세상 모르고 잤다. 아마 거의 3개월만의 숙면이었다지.
그리고 뭔가 둘 만의 요새가 생긴 것 같아 전우애가 샘솟는 기분이 들었다.힘내자. 내 고양이. 매일 고마워. 오늘도 살아있어 줘서.
+ 알리에서 배송 온 빔프로젝터 Hy300과의 조합도 꽤 괜찮다. 회베이지 컬러의 텐트라서 방안을 어둡게 하면 스크린으로 쓰기 좋다. 고양이 게임 같은 거 틀어주면 한참동안 잘 노는데 그거 보면서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린다. 너무너무 기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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