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들의 아파트 (88분, 2020년)
<고양이를 부탁해>, <말하는 건축가>를 좋아한다.
이 다큐는 바로 그 정재은 감독의 다큐멘터리인데다,
고양이가 무더기로 나온다는 소문을 들으니 도저히 안 볼 수 없었다.
무조건 크게 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방역패스가 해제된 이래, 실내 공공장소 출입을 스스로 금하고 있는데도
굳이 극장으로 갔다.
내가 자주 가는 작은 극장에는 고양이가 한 마리 살고 있는데
그 분이 오늘은(3/20)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내가 티켓 사는 걸 구경하며
데스크에 앉아 계시는 것 아닌가. (직원분에게) 몇 살이냐고 여쭤봤다.
다섯살이라는 요긴한 정보를 얻었다.
워낙 작은 예술영화 극장이고, 좌석수가 단촐한 상영관이긴 해도
코로나 이후로 늘 텅 빈 채로 많아야 다섯명이서 보곤 했는데
오늘처럼(3/20) 많은 관객이 관람하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조금 놀랐다.
그리고 상영이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한숨이 터져 나오는 게 웃겨서 ...
이건 아는 사람만 아는 건데,
약간 귀여움이 역치에 도달하려고 할 때 한숨 나는 거 아시죠 ...
한숨이 방울방울 터지는 거 알죠.
홈마 아이돌 직캠 보는 기분이 이런 걸까 싶었달까.
조금만 기다리면 집에서도 볼 수 있게 된다는 거는 알지만
큰 스크린으로 보면 우리천재냥이들이 우주에서 더 많은 픽셀을 차지하는 거니까요...?
늘상 황제 폐하 포스로 집 안에 들어 앉아
사랑의 오오라로 나를 조정하는 인도어 고양이들만 모시며 살다가
도시 생태계에서 씩씩하게 살아가는 고양이들을 보니
참 늠름하고 튼튼하고 멋있더라.
실내묘에게는 없는데 실외묘들에게는 있는 그거 ...
다큐를 보는 내내 그게 뭐지 ... 그게 뭐지 ... 한참 생각했다.
태생적으로는 없는데 생존에 특화되어 길러진 사회성이랄까.
(아직도 꼭 들어맞는, 적절한 말을 찾지 못했다.)
뚱이의 의기양양함도 예냥이의 '(산)독기'도 각자 다르지만
어떤 유연한 사회성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것 같았다.
반면 나는 여전히 울집 1번 고양이에게 할큄을 당할 때가 있는데
그 때마다 얘가 아직도 열어주지 않은 마음의 문이 있다고 생각하고
어쩐지 다행스럽다. 함께 10년을 넘게 살았는데 여전히 넌 너야.
길고양이의 사회성 있음과 집고양이의 여전한 공격성이
내게는 같은 맥락의 지표가 되는 것 같다.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화단에 죽어 있는 고양이를 치워 달라고 신고하자,
구청 청소과에서 나와 쓰레받기로 쓸어 담아 종량제 봉투에 넣는 장면.
경쾌한 템포로 스치듯 잠깐 나왔고
앞뒤 맥락에서 어딘가 조금 동 떨어지는 느낌의 씬이었지만
그걸 이렇게라도 남겨놓은 마음을, 직관적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또 하나.
단지내 모든 고양이들의 얼굴을 구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
아는 고양이는 결국 구별하고야 만다는 게 진짜 신기하죠.
그런 게 사랑인가보다.
도시의 고양이는
때때로 극진한 보호를 받는 위치에 있기도 하고,
극악무도한 학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마지막에는 타는 쓰레기로 배출된다.
도시의 고양이는 행복했을까.
이 다큐는 이 질문을 현재형으로 바꾸어 다시 되묻는 작업을 한다.
고양이는 행복할까.
인간의 보호 아래에서 충분한 먹이와 안전을 획득하면
그걸 우리 멋대로 행복이라 말해도 좋을까.
그런 질문을 스스로 던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바깥은 너무 위험하니 우리집으로 가자고
혹은 저 모퉁이에 머리짱큰 깡패냥 때문에 도저히 이 꼴로는 밖에선 못 살겠으니 우리집에 오겠다고
고양이로부터 간택을 받거나
구조라는 이름의 납치를 강행하여 고양이와 가족이 되었지만
나도 늘 되묻는다. 그래서 고양이들은 지금 행복할까.
때로 혹독하고 궂은 날씨가 계속되지만
어떤 균형에 도달한 도시X자연X생태계는 그 자체로 대단히 유연하고 훌륭할 수 있구나.
몰랐던 걸 알게 되었다. 아파트 단지에서 다복하게 살아온 고양이들의 모습.
인간이 건물벽에 오함마를 대기 전까지 말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둔촌동 주공 아파트가 재건축에 들어가게 되면서
그 대단지를 제 영역으로 삼고 살아온 추정 250마리의 고양이들을
건물이 붕괴되기 전에 바깥으로 이주시키려는 사람들의 노력과 그 여정을 담담하게 담고 있다.
재건축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구조하지 않았으리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공감했다.
다큐를 보며 두 개의 질문을 했다.
첫째, '이 땅의 주인은 누구인가',
둘째, '이 땅에 태어난 고양이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 대답은 생각보다 간단치가 않다.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극장에 다시 불이 켜지는 순간,
맞서는 대답 말고 나란히 서는 대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 그리고 러닝타임 마지막 4분 볼 때
뭐 좀 귀여우면 '아파트 뿌셔' '전봇대 뽑아' 이런 말 했던 과거를 반성했다.
뭔가를 뿌시는 건 생각보다 흉폭하고 돌이킬 수 없는 거더라.
정재은 감독님 아이클라우드에는 9시간 분량의 영상이 있다는 기사를 읽은 것 같은데
그걸 보고 싶다는 게 내 최종 감상평이다.
어떤 존재든 곁에서 함께 살아가기로 마음 먹는 건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영화에서는 '개입'이라고 표현했지만 길들인 것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겠다.
쉽지 않다는 걸 알면서 하는 사람들은 반쯤 미친 사람이고
나는 늘 그런 사람들을 좋아한다.
작년은 내게 어떤 분기점이 되었다.
그 전까지는 스스로 마음이 약한 사람이라고 여겼다면
이제는 그러하기에 비겁해지지 않도록 최선의 주의를 기울여야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다짐과 공명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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