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소비

3월의 영화, 구원 같은 소리 <더웨일> (미 크라잉...)

조구만 호랑 2023. 3. 4. 00:04

 

영화 보고 이 포스터 받았다!

너무 좋다! 

 

 

어찌보면 흔한 이야기.결혼해서 낳은 딸 아이가 막 학교에 들어갈 때쯤 자신의 강좌를 듣던 남자와 사랑에 빠진 아버지는 사랑을 찾아 가정을 떠났고 그로부터 8년이 지난 후, 죽음을 앞두고 있다.

 

그토록 사랑하던 남자는 말라서 죽었고 홀로 남겨진 남자는 슬픔인지 죄책감인지 모를 이유로 폭식을 반복하며 (영화 속 장면을 보면 왠지 우리나라 '먹방'과  + 미국 유명 유튜버 Nikocado Avocado가 떠오름) 더 이상 거대해 질 수 없을 만큼 거대해진 채, 물 밖에 나온 고래처럼 쌕쌕거리고 있다. 그저 소파에 붙박힌 채 목전에 닥친 죽음을 기다리는 신세의 남자는 이와중에도 자신이 맡은 에세이 강의를 온라인으로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고 자신의 얼굴은 화면에 비추지 않는다. 내게 이 영화가 슬픈 이유는 정확히 이 지점이었다.오늘내일 하는 와중에도 인간은 자신이 역겨운지, 역겨운 존재로 보이는지 끊임없이 묻는 존재라는 게.

 

지나가다 우연히 그를 돕게 되는, 뉴 라이프 종말론자 청년과 그를 돕는 오랜 친구 간호사 리즈와 8년 전에 자신을 버린 아버지에게 화가 나 있는 딸 앨리.그리고 뒤에 등장하는 전 아내.

 

드러난 정보를 그러모아 보면 그와 이혼한 후로 그의 전 아내는 알콜에 상당히 의존적인 삶을 살아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자신이 나쁜 엄마인지 들키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으로.

 

모두 다 고통의 이유는 다르지만 자기 앞의 고통을 희석하기 위해인간은 손에 무언가 쥐게 되어 있다는 것.찰리의 전 아내도, 찰리의 파트너도,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찰리도, 잠깐의 마비를 위해 제각각 의존된 상태였던 것.

 

사실 인물들 중에서는 마지막까지 찰리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는 리즈에 대해 가장 많이 얘기하고 싶은데 그 마음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 

 

이 영화는 

좁은 공간에서, 적은 인물들이, 짧은 기간동안 일어나는 일들을 보여 주는데 

심지어 주인공 찰리는 거동이 불편해 움직임이 거의 없다. 그런데 말수가 적은 사람이 하는 말이 많은 의미값을 가지듯이 찰리의 움직임에는 낭비가 없어 오히려 이상한 역동을 자아냈다. 

그리고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일단 (1) 브렌든 프레이저와 세이디 싱크,그리고 홍 차우의 연기력의 공이 큰 것 같고 ... 

 

(2) 긴장을 어마어마한 솜씨로 다뤄내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무언가를 들어 올리려고 찰리가 애쓸 때,그 때도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이 됐으니까. 이상한 집게가 귀엽다는 생각마저 들고...(3) 마지막으로 하나 더 덧붙이자면, 인물들이 어디에나 흔히 있는 사람들처럼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 같다가 어느 순간 살짝 기분이 나빠질 정도로 관객을 배반하는 순간이 있는데  이 타이밍이 천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냥 보면 전형적인 인물인데 가만히 속을 파 보면 어딘가 기묘하게 낯설어지는,어긋나 있는 거울 속의 얼굴들이 죽음을 앞둔 주인공을 순차적으로 방문하면서 이야기를 진행시켜 가는 게 흥미를 더했다. 

 

솔직히 지난 달에 본 <애프터선>이

오늘 본 <더웨일>보다 내 취향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죄송하게도 그건 중간에 좀 졸았다.

나에게는 영화관 마의 60분 구간이 있는데

영화가 시작되고 60분이 지날즈음

반드시 시계를 한 번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슬슬 집중력이 바닥나기 시작하는데 ... 

이 영화는 영화가 끝나기 20분 전에서야 (그냥 100분이 훌쩍 지나 있었음)

내가 영화 속 인물들과 영화의 막바지까지 휩쓸려 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문득 찰리의 임종이 가깝다는 걸 알았고.

죽음이 닥치는 순간이 이렇게 급작스러워도 되나 싶었는데 죽음은 원래 급작스러운 거니까. 

 

보면서 되게 연극적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봤는데 

나중에 엔딩크레딧 올라갈 때 보니까 

연극이 먼저였던 것 같더라. 

진짜 한정된 공간에서 오만가지 긴장감을 다 뽑아내는 <블랙스완> 감독님의 솜씨. 솔직히 안 울려고 작정하고 들어갔는데, 결국 울고 만 건 이런저런 설정과 연출의 탓이다.

 

다 죽게 생겼는데도 병원 가기를 거부하며 딸에게 12만 달러를 물려주려고 애쓰는 이 거대한 남자의 지극한 부성애 때문이라기보다는  ...미국의 의료보험제도 진짜 미쳤구나 의료보험 민영화 진짜 못쓰겠다 라는 생각과 함께 딱 봐도 이미 미친 십대여자애를 어떻게든 예쁘다 멋지다 완벽하다 되내며 사람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은임종 직전의 한 존재에 대한 가여움이랄까.

 

구원에 대해서 나는 1도 모르지만 '내가 가장 잘한 일' 같은 걸 반추하며 집착하는 순간 구원은 저 멀리 멀어진다는 건 알겠어.

쿠바에 있는 병원에 가자, 찰리.